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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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연(功臣宴)

서지사항
항목명공신연(功臣宴)
용어구분용어용례
상위어공신(功臣)
하위어중삭연(仲朔宴), 회맹연(會盟宴)
관련어사연(賜宴), 진연(進宴), 친공신(親功臣)
분야왕실
유형의식 행사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친공신과 승습한 적장(嫡長) 등 생존한 모든 공신들이 참여하는 잔치.

[내용]
조선시대의 공신연에는 회맹연(會盟宴)과 진연(進宴)의 두 가지가 있었다. 회맹연은 공신회맹제 후 날을 정해 왕과 공신이 함께하는 잔치로서 이때 공신들에게 공신교서 및 초상화 등을 나누어주었다. 진연은 왕, 왕비, 대비 등에게 경사가 있을 때 군신들이 올리는 잔치로서 충훈부(忠勳府)와 충익부(忠翊府)에서 올리는 진연이 공신연이었다. 충훈부에서는 매년 2월, 5월, 8월, 11월 등 4계절의 중간 달에 진연하였으므로 중삭연(仲朔宴)이라고도 하였다. 원종공신들이 소속된 충익부에서는 1년에 한 번만 진연하였다.

회맹연, 중삭연, 진연 중에서 명실상부한 공신연은 친공신들의 잔치인 회맹연과 중삭연이었다. 회맹연과는 달리 중삭연은 규정대로 매년 4번씩 시행되지는 않았다. 중삭연이 충훈부 내에서 공신들끼리 자체적으로 하는 잔치가 아니라 왕에게 올리는 진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은 정치적, 행정적인 이유로 중삭연을 받지 않으려 했다. 정치적인 이유는 왕이 공신연을 자주 열 경우 공신연에서 소외된 수많은 양반관료들의 불만이 높아질까 염려해서였다. 행정적인 이유는 공신연을 베풀면 생존한 친공신과 승습한 적장자들은 비록 죄를 받아 처벌을 받는 중이라도 의례 참여하였는데, 참여한 공신에게는 수많은 시상이 뒤따름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면되는 효과가 있으므로 법질서가 문란해질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공신연을 열지 않을 경우 왕과 공신 사이가 소원해질 염려도 있어서 몇 년에 한 번씩 특별히 공신연을 베풀고는 했다.

[용례]
上御仁政殿 受功臣宴[『성종실록』 19년 8월 23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

■ [집필자] 신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