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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비정기적인 사절로, 조선의 왕이나 왕비가 훙거(薨去)하였을 때 이를 중국에 알리기 위하여 보낸 사절.
[내용]
고부사는 중국에 왕의 죽음을 알리고 새 왕의 즉위에 대하여 승인을 받는 것이 임무였다. 조선에서 최초로 중국에 고부사를 파견한 것은 1408년(태종 8) 5월 태조가 죽은 뒤 청성군(淸城君) 정탁(鄭擢)과 공안 부윤 정부(鄭符)를 고부청시사의 명목으로 명나라에 파견한 것이었다.
사절의 구성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조선후기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볼 때 대체적으로 부사(副使)가 없는 단사(單使)로, 정사 1명, 서장관 1명, 당상관 1명, 상통사(上通事) 2명, 질문종사관(質問從事官) 1명, 압물종사관(押物從事官) 4명, 청학신체아(淸學身遞兒) 1명, 의원 1명, 사자관(寫字官) 1명, 군관 4명, 우어별차(偶語別差) 1명, 만상군관(灣上軍官) 2명 등이었다. 이 사행(使行)에는 방물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용례]
告訃使李潑回自北京 潑等至北京 皇帝方北征 禮部以凶訃不可聞於行在 只受表文 使潑等還國 由是大行太上王行狀不呈於禮部而還[『세종실록』 4년 8월 13일]
[참고문헌]
■ 박성주, 「高麗·朝鮮의 遣明使 硏究」,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