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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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顧命)

서지사항
항목명고명(顧命)
용어구분전문주석
관련어유고(遺誥), 유교(遺敎), 유명(遺命), 유조(遺詔), 유훈(遺訓)
분야왕실
유형개념용어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왕이 임종 전에 세자 및 대신들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말. 또는 그러한 말을 전달하는 의식.

[개설]
본래는 구두로 전달하고, 이를 유교(遺敎)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병이 위독해지기 전에 문서의 형태로 작성하여 전달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고명을 ‘유명(遺命)·유훈(遺訓)·유조(遺詔)·유고(遺誥)·유교’ 등의 용어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고명의 내용은 보통 다음 왕위 계승 문제, 자신의 장례와 관련된 부탁, 생전에 결정치 못한 국사(國事)의 처결 방향, 왕실 가족을 잘 돌보라는 부탁 등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명을 남기는 것을 국상(國喪)의 절차로 제도화하였다.

[내용 및 특징]
고명이 의례 절차로서 최초로 규정된 것은 『세종실록』 「오례」에서였다. 즉, 왕이 환후가 위급하면 액정서(掖庭署)사정전(思政殿)에 악장(幄帳)과 보의(黼扆)를 설치하고, 내시(內侍)가 부축하여 왕을 여(輿)에 태워 사정전으로 모신 다음, 왕이 세자와 대신들에게 고명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절차가 끝나면 대신 등은 물러가서 전위유교(傳位遺敎)를 만들도록 하였다[『세종실록』 오례 흉례 의식 고명]. 이후 위의 내용이 변화 없이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흉례에 계승되었다. 효종대 김집(金集)이 내시가 고명에 참석하도록 한 『국조오례의』 내용을 개정토록 건의한 바 있으나 수용되지 않았으며[『효종실록』즉위년 6월 24일], 『국조오례의』에 수록된 내용이 변화 없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준용되었다.

고명을 직접 들은 대신 혹은 유교 등을 통해 뒷일을 부탁받은 대신들을 고명대신(顧命大臣)이라 칭하였는데, 보통 이들은 선왕의 생전에 두터운 신임을 받은 자들이었으며, 후대 왕의 재위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후사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명의 내용은 큰 정치적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종종 고명의 내용과 전달 과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조정의 현안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변천]
고명의 기원은 『서경』 「고명(顧命)」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주(周)나라의 성왕(成王)이 임종 전에 군신(群臣)들을 불러서 후사인 강왕(康王)을 잘 보필하여 선정을 베풀 것을 당부한 것이었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고명을 남겼던 것이 중국 측 사서(史書)에 여러 차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고명의 예가 보인다. 고려시대 역시 태조 왕건(王建)을 비롯하여 여러 왕이 고명을 남기고 있는데, 특히 몽고 침입 이전인 고려전기의 왕들은 대부분 유조를 남기고 있어 그 내용이 『고려사(高麗史)』에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고명이 흉례의 절차로 정해졌으며 임종 전에 세자와 대신을 직접 면대하고 고명을 남기는 것이 원칙으로 천명되었다. 그러나 원칙에 준하게 고명을 남긴 왕은 인종, 영조, 정조 등에 불과했으며, 많은 경우 고명을 남기지 못하거나 미리 유교를 작성하여 사후에 반포하였다. 때문에 고명이나 유교의 내용이 실록에 기록된 경우가 많지 않다. 세종대에는 집현전(集賢殿) 학사들을 불러 사후의 일을 부탁한 예가 있는데, 이 역시 내용상으로는 고명과 비슷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의의]
고명은 후대 왕의 즉위 및 당대의 정치 현안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고명의 내용 및 그 처리 과정은 당시 정치 현황을 추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자치통감(資治通鑑)』
■ 『서경(書經)』

■ [집필자] 강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