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대명률』 「형률(刑律)」 인명편(人命編)에는 조축고독살인조(造畜蠱毒殺人條)라고 하여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고독(蠱毒)을 제조·비축하거나 그 제조 기술을 가르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죄를 범한 자는 참형(斬刑)에 처하고 그 재산을 관(官)에서 몰수하며, 사정을 몰랐던 처자(妻子) 및 동거하는 식구들까지도 모두 유(流) 2,000리에 처하여 안치(安置)시키는, 매우 무거운 형벌이다.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의 강(講)에서는 ‘고(蠱)’에는 많은 종류가 있어 모두 밝히기 어렵고 그런 일들은 사술(邪術)에 관한 것이라 알 수 없으나, 여러 독벌레를 모아 한 그릇 안에다가 놓고 서로 잡아먹게 하여 하나만 남긴 것이나 뱀의 고독을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또한 고독은 10악(十惡) 가운데 부도(不道)에 해당하여 일반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428년(세종 10)에는 세종의 명에 따라 고독 사용에 대한 금령(禁令) 및 신고자에 대한 보상(報償)에 관해 논의가 이루어져서, 이장(里長) 등이 이를 고발하지 않는 경우에는 율에 따라 처벌하고, 고발하거나 포획한 자에게 면포(綿布) 50필을 주는 것으로 정해지게 된다. 1491년(성종 22)에는 고독 제조 및 비축한 죄를 범한 자의 명단[蠱毒案]에 기록된 자 및 그 자손들이 옮겨가서 백성들을 해하는 것을 우려하여, 이들을 빠짐없이 기록해 본 지역 밖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교서(敎書)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후 편찬되는『속대전(續大典)』에서는 고독안(蠱毒案)에 기록된 자의 출입 및 도망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신고자에게 면포 30필을 지급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