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전근대 사회에서 계(契)는 보편적인 사회조직이다. 계는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목적성을 띠고 있으며, 구성원들은 시대별로 신분·촌락의 분합(分合)에 따라 다양하다.
[내용 및 특징]
계는 목적에 따라 학계(學契)·종계(宗契)·농계(農契)·상춘계(賞春契)·혼인계(婚姻契)·상두계(喪頭契)·시사(詩社)·미타계(彌陀契)·동계(洞契)·식리계(殖利契)·향약계(鄕約契) 등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계의 존재 양태는, 구성원인 계원의 명단을 기록한 좌목(座目), 그 목적과 운영 규칙을 기록한 계안(契案), 재정과 그 출납 현황을 기록한 치부책(置簿冊), 모임을 갖는 날의 참석 여부를 기록한 도기책(到記冊) 등을 필수 요건으로 가지고 있다. 계의 운영을 전담하는 계수(契首)·계장(契長)·도유사(都有司)·유사(有司) 등의 직임 조직도 갖추고 있다.
[변천]
계는 사회의 지도 이념에 영향을 받았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향도회(香徒會)는 그 조직과 운영 원리에서 불교 이념의 영향을 받았다. 향도회는 사찰을 중축(重築)하고 불탑과 불상을 조성하며 신도들의 봉불 의식을 거행하는 등 그 기능이 다양하였으며, 규모 면에서도 향촌 사회가 하나의 단위로 결성되기도 하였고 사찰을 단위로 결성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계회는 그 조직과 운영 원리에서 유교의 지도 이념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국가를 비롯해 각종 계회에서 연행하였던 제사 의례는 음사(淫祀)로 규정하는 등 사전(祀典)을 정비하여 갔다[『태종실록』 13년 6월 8일]. 1664년(현종 5) 기록에서는 신불 단체였던 향도계가 상장례 위주로 변질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현종개수실록』 5년 11월 21일]. 국가 지도 이념의 영향으로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계 조직도 변화한 것이다.
조선초기 새로운 지도 이념인 유학을 수용하기 위한 학계(學契)가 결성되었는데 이들 계원은 사림의 동향과 과거시험의 경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입신출세를 지향하고 있었다. 조선중기에는 부계 친족 중심의 가족 질서가 확립되면서 종법 의식에 따라 종계(宗契)가 확산되었다[『명종실록』 7년 7월 16일]. 향약의 4대 덕목을 중심으로 향촌 질서를 구축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향약계(鄕約契)도 확산되었다[『효종실록』 즉위년 10월 23일].
조선후기에는 사회·경제적 발전을 배경으로 계 조직이 발달하였다[『정조실록』 15년 1월 22일]. 면리 조직이 정착되면서 동계(洞契)가 보편화되었다. 향약적 질서를 토대로 동제(洞祭)를 주관하였던 동계는 면리 조직이 분화되면서 두레·상두계·혼인계·고청제(告淸祭) 등과 맞물려 그 기능에 따라 소동계(小洞契)·중동계(中洞契)·대동계(大洞契) 형태로 분화되어 갔다. 아울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신분 질서가 크게 약화되며 하층민이 계 조직의 주체로 등장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참고문헌]
■ 김삼수, 『한국사회경제사연구-계의 연구-』, 박영사, 1963.
■ 김필동, 『한국 사회조직사 연구 : 계 조직의 구조적 특성과 역사적 변동』, 일조각, 1992.
■ 이규대, 『조선시기 향촌사회 연구』, 신구문화사, 2009.
■ 이해준, 『조선 시기 촌락사회사』, 민족문화사, 1996.
■ 정진영, 『조선시대 향촌사회사』, 한길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