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조정에서는 궁중의 대례나 중국 사신 접대 등에 필요한 여악을 충당하기 위해 경기(京妓)를 동원하였다. 여악에 참여하는 경기는 그 수가 정해져 있었다. 1447년(세종 29) 3월 18일 기사에 125명이던 것을 100명으로 줄였다는 기사가 있고, 1510년(중종 5)에는 그전까지 158명이던 정원을 80명으로 줄이기도 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시대에 따라 여러 번의 숫자 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에게는 사치를 금하는 조항에서 사치품으로 규정한 금은주옥(金銀珠玉)의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1년에 미(米) 1석을 생계비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