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겹고(裌袴)는 겹바지라고도 한다. 주로 봄가을에 겹고를 입고, 여름에는 홑바지, 겨울에는 솜바지나 누비바지를 입는다. 1430년(세종 12) 악공(樂工)의 의복은 저고리는 붉은색 계통의 자수 저고리를 입고, 바지는 흰색 비단으로 지은 겹바지인 백견겹고(白絹裌袴)를 입는다 하였다[『세종실록』 12년 12월 15일]. 1468년(세조 14)에는 사신에게 하사하는 물품 중 흰색 초(綃)로 만든 겹바지인 백초겹고(白綃裌袴)가 포함되었다[『세조실록』 14년 4월 9일].
바지는 기록에 정인지(鄭麟趾)가 ‘파지(把持)’라고 한 것이 최초이다. 영조 때 간행된 『국혼정례(國婚定例)』·『상방정례(尙方定例)』에 모두 파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말기의 『궁중의대발기(宮中衣襨撥記)』에 바지라는 기록이 처음 보인다. 왕과 왕비의 바지는 특별히 ‘봉디’라 하였다. 우리나라의 바지는 고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본 복식으로 형태의 변화가 거의 없다. 삼국시대에는 여자도 바지를 겉옷으로 입었으나, 이후에는 속옷으로 입게 되었다.
남자의 바지는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여자의 단속곳처럼 폭도 넓고 바짓부리가 넓은 형태였으나,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바짓부리가 좁아지는 사폭바지가 생겨나게 되었다. 바지의 옷감은 계절별로 달리하였는데, 여름에는 삼베나 모시를 이용하였고, 봄가을에는 숙고사(熟庫紗)·진주사(眞珠紗) 등을 겹으로 하여 입었으며, 겨울에는 명주(明紬)·삼팔(三八)·자미사(紫薇紗)·호박단(琥珀緞) 등에 솜을 두거나 누벼서 입었다.
조선시대 여성의 바지는 주로 속옷으로 입혀졌는데, 밑이 막힌 바지를 입고 그 위에는 밑이 트인 바지를 입는 것이 일반적인 착장법(着裝法)이었다. 기록에는 이의(裏衣)·겹고·단고(單袴) 등의 명칭이 보이나, 현전하는 유물에는 밑이 막힌 바지[襠袴]와 밑이 트인 바지[開襠袴]가 있으며, 이 두 양식을 합쳐서 입기 편하게 만든 세 가닥의 절충형 바지도 있다.
[용례]
宋制 大朝會樂工黑介幘 執麾人平巾幘 竝(裶)〔緋〕綉鸞衫白絹裌袴抹帶 引文舞頭及文舞郞 竝進賢冠黃鸞衫銀褐裙綠𧛾襠革帶烏皮履[『세종실록』 12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