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내용]
궁귈 경비와 궐내 순찰을 비롯하여, 왕의 행차나 외국 사신 접견 등의 행사 때 시위를 담당한 겸사복의 지휘관이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종2품으로 정원은 3명이었는데 다른 부서의 관원이 겸임하였다. 겸사복이 편성된 것은 1409년(태종 9)이었으나, 겸사복장은 1461년(세조 7)에서야 처음으로 4명이 임명되었다. 1464년(세조 10)에는 겸사복의 조직이 정비되어 종2품아문으로 직제화되고 특수 병종(兵種)인 겸사복 50명이 배속되었는데, 이때 겸사복장의 정원도 3명으로 정해졌다. 이후 『속대전』에서는 정원이 2명으로 줄고 품계도 정3품으로 낮아졌다. 소속 역시 금군청으로 바뀌었다.
[용례]
傳旨兵曹曰 兼司僕勤苦侍衛 待滿三十朔加資 又無遞兒職遷轉之法 沈滯可矜 自今依內禁衛例 六品以上則仕滿一千八百 七品以下則滿八百二十五者加資 每年兩都目授職 兼司僕將考勤慢啓達乃授[『세조실록』 7년 1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