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조선시대 각 도에 설치된 중간 규모의 군사 진영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 등이 통솔하던 진(鎭).
[내용]
조선시대의 지방 군사제도는 진관체제(鎭管體制)를 바탕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각 도에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있어 도내(道內)의 육·수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는 주진(主鎭)이 있고, 그 아래에는 목사(牧使) 등이 예겸(例兼)하는 경우가 많은 첨절제사(僉節制使)가 거진(巨鎭)을 단위로 군사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말단 제진(諸鎭)은 군수(郡守) 이하가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이하의 직함을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은 진관체제에 따라 전국의 중요한 군사거점에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변의 제진(諸鎭)을 통할하게 하였는데, 육군의 경우에는 함경·평안도에 31개소, 그 밖의 6도에 24개소의 거진을 설치하였고, 수군의 경우에는 함경도를 제외한 7도에 12개소의 거진을 두고 있었다. 거진은 절도사가 있는 주진으로부터 지휘를 받고 예하의 제진에 대해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였지만, 양계지역에는 제진이 없는 독진(獨鎭)이 12개소나 있었다. 거진의 지휘관인 절제사와 첨절제사는 육군의 경우 양계의 독진을 제외하면 모두 부윤(府尹)·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목사·부사 등의 수령들이 겸직하였고, 수군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실직(實職)이었으나, 부산과 제포(齊浦)의 첨절제사만 경관(京官)으로서 겸직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