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개설]
거성(去聲)은 성조(聲調) 언어였던 중세 국어에서 가장 높은 소리에 해당한다. 『훈민정음』에 기록된 예시어들 중 거성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단어에는 혀[舌], 못[釘], 입[口] 등이 있다. 음절의 왼쪽에 방점 하나를 찍어 표시하였다. 한편, 중국어의 거성은 높고 평탄한 소리를 가리킨다.
[내용 및 특징]
우리말의 성조에 관한 기록은 1446년(세종 28)에 처음으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당시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한 기사에 『훈민정음』 「예의(例義)」의 일부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 사성의 특징이 간략하게 언급되었다[『세종실록』 28년 9월 29일]. 그에 따르면, 글자는 반드시 합하여 음을 이루게 되는데, 왼쪽에 1점을 가하면 거성이 되고, 2점을 가하면 상성이 되고, 점이 없으면 평성이 되며, 입성은 점을 가하는 것은 같은데 촉급(促急)하게 된다. 즉 낮은 소리인 평성에는 점을 찍지 않고, 높은 소리인 거성에는 점을 하나, 처음에는 낮다가 나중에는 높아지는 상성에는 점을 두 개 찍어 성조를 표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입성은 폐쇄음으로 마무리되는 음절의 발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입성은 소리의 높낮이와는 상관없이 촉급(促急)을 다루는 것이므로, 정확히 말하면 중세 국어의 성조는 평성·상성·거성의 세 종류로 구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훈민정음은 창제 단계에서 중국 운학(韻學)의 영향을 받아, 성조를 음절의 구성 요소로 삼게 되었다. ‘손[手]/손[客]’의 예에서 보듯 동음어를 표기할 때 방점으로 성조를 표시하여 단어의 의미를 구분한 것이다. 따라서 성조는 음장(音長)이나 강세 같은 초분절음소로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중세 국어와 근대 국어를 구분 짓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성조는 훈민정음 창제를 전후한 시기부터 16세기 전반까지는 비교적 정연하게 문헌 표기에 반영되었다. 1445년(세종 27)에 창작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비롯해, 1527년(중종 22)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586년(선조 19)에 국가 기관인 교정청(校正廳)에서 발간한 『소학언해(小學諺解)』를 살펴보면, 성조 표기가 혼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조로서의 거성의 역할 역시 16세기 후반에 소멸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