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정의]
조선전기 중앙군 중에서 가장 중추적인 군사력을 이루며, 오위제(五衛制)에서 중위(中衛)에 속하는 군인.
[내용]
갑사는 조선전기에 왕을 보위하는 정예병으로서 중앙군의 중추적 군사력을 이루는 군인이었다. 15세기 후반 갑사의 수는 양인의 의무군역인 정병(正兵)과 수군(水軍) 다음으로 많은 14,800명에 달하였다. 한편 조선초기에 갑사는 무반 관료로서 사직(司直)·부사직(副司直)·사정(司正)·부사정(副司正) 등의 관직에 올라 이에 따른 과전(科田)과 녹봉을 받았고, 또 군인으로서 봉족(奉足, 保人)까지 지급받았다. 갑사는 일반 양인의 의무 군역과는 달리 취재(取才) 시험에 의해 선발되었고, 이러한 취재 시험의 응시는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신분적, 경제적 조건을 갖춘 자에 한하여 가능하였다. 비록 취재 시험에 합격하여 갑사가 되었더라도 매월 실시하는 연재(鍊才) 시험에 불합격하면 파출(罷黜)을 면치 못하였다. 농사일을 돌보지 않고 말을 타면서 무예를 익힐 수 있는 부유한 계층만이 입속(入屬)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갑사는 15세기 후반부터 군액의 증가에 따라 실직(實職)에서 체아직(遞兒職)으로 지위가 하락하면서 변질되었다. 그리고 16세기에 들어와 사회경제적 변동 속에서 차츰 소멸의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