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연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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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문의 :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02-3290-5872

적벽가(赤壁歌)

서지사항
서명한국전통연희사전
대분류판소리
소분류연희작품
가나다
자료명적벽가(赤壁歌)
자료문의고려대학교 전경욱 교수
기타2010년도 한국학진흥사업 선정 연구결과입니다.

※자료문의 연락처: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02-3290-5872



【정의 및 이칭】
〈적벽가(赤壁歌)〉는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가운데 적벽대전(赤壁大戰) 장면을 차용해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결의를 한 후 제갈공명을 모셔와 적벽대전에서 조조(曹操)의 군사를 크게 이기고, 관우가 조조를 사로잡았다가 다시 놓아준다는 내용으로 재구성한 현전 판소리 작품이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도망가다가 관우와 마주친 협곡의 이름을 따서 〈화용도(華容道)〉 또는 〈화용도타령(華容道打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래 및 역사】
〈적벽가〉는 중국 소설인 〈삼국지연의〉이 저본인 작품으로, 그 발생 경로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받아왔다. 〈삼국지연의〉는 《삼국지(三國志)》라는 역사서에 기초하되, 작자들의 상상력을 가미한 연의소설(演義小說)이다. 연의소설은 사서(史書)와 달리,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소설적 허구 및 인물의 전형화가 허용되는 장르이다. 《삼국지》는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서기 280년에 쓴 삼국의 역사서로, 분량이나 특정한 단어․연호의 사용을 볼 때 위(魏)를 정통으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조 송나라 때 배송지(裵松之)가 《삼국지》에 해설을 붙여 〈삼국지 배송지 주〉를 완성했고, 당나라 이후 원대에 걸쳐 화본(話本) 즉 이야기 대본 형식의 〈설삼분(說三分)〉으로 정리되었다. 명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이것을 바탕으로 소설 〈삼국연의〉를 지었고, 청나라 초기 모종강(毛宗崗)에 의해 120회본의 〈삼국지연의〉가 새롭게 탄생했다. 《삼국지》가 〈삼국연의〉 및 〈삼국지연의〉로 거듭나면서 여기에 완전한 허구가 가미되거나 역사적 사실이 확대 해석되었으며, 민간 전설이 도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우가 중심적인 인물이 되고, 촉한이 정통으로 내세워지며, 지역문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
〈적벽가〉 부분에 해당하는 〈삼국지연의〉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0년 넘게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비(劉備)는 한의 황실을 다시 일으켜 세울 뜻을 품는다. 이에 도원(桃園)에서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형제의 의를 맺고,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노력으로 제갈량(諸葛亮)을 얻는다. 형주목사(荊州牧使)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했던 유비는 한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된다. 한편 조조는 전국을 통일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형주로 쳐들어간다. 유표의 뒤를 이은 유장(劉璋)은 조조 대군의 침공에 곧바로 항복해 버리고, 유비는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강하(江夏)로 도망한다. 강하에 도착한 유비는 오나라로 제갈량을 보내어, 함께 조조를 물리치자는 제안을 전한다. 손권(孫權)은 이에 주유(周瑜)를 대도독으로 삼고, 조조의 백만 대군과 맞서 싸울 것을 명한다. 이 싸움이 적벽대전이며, 조조의 백만 대군은 여기서 크게 패하고 만다.
〈삼국지연의〉는 선조 대에 조선에 유입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무렵에 이르러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독자층의 폭도 확대되었다. 〈삼국지연의〉에는 조조를 간웅(奸雄)이라는 부정적인 인물로, 유비․제갈공명․관우․장비․조자룡 등을 어질고 용맹스러운 긍정적인 인물로 인식하는 작자의 시각이 드러난다. 판소리 〈적벽가〉에서는 이들 양편 인물들 간의 대립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적벽대전’이 중심 내용으로 선택된 것이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도 《교방가요》에 “화용도 이것은 지혜로운 장수를 칭송하고, 간웅을 징계한 것이다(華容道 此勸智將 而懲奸雄也)”라는 기록을 남겼다.
〈적벽가〉는 판소리의 연행원리가 어느 정도 확립된 이후에 성립된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판소리라는 장르 자체가 정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소설이 판소리화되어 불렸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춘향가〉와 같은 판소리가 형성된 17세기-18세기의 어느 시점에 〈적벽가〉의 초기적인 형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성립 당시의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기반한 ‘조조 패주 대목’이 중심이 되는 소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적벽가〉와 관련해 비교적 이른 시기의 기록인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1843)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송만재는 〈적벽가〉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궂은비에 화용도로 도망친 조조(秋雨華容走阿瞞), 관운장은 칼을 쥐고 말에서 보는데(髥公一馬把刀看). 군졸 앞서 비는 꼴 정녕 여우 같으니(軍前搖尾眞狐媚), 우습구나, 간웅의 모골이 오싹(可笑奸雄骨欲寒)”이라는 관극시를 남겼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후 화용도로 도망가는 장면을 묘사한 시인데, 송만재가 이 부분을 택한 것은 당시의 〈적벽가〉 가운데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관극팔령(觀劇八令)〉에 〈삼절일(三絶一)〉이라는 제목으로 〈적벽가〉의 관극시를 남겼는데, 그가 선택한 장면 역시 화용도 대목이었다. “타고난 성정이 모진 얄미운 조조(天生天厄老阿瞞), 화용도에 밤비 내리니 갑옷이 차갑네(夜雨華容衣甲寒). 원수를 갚고 은혜를 갚는 것이 한가지이니(報怨酬恩同一例), 장군의 높은 절의에 후인들이 탄식하네(將軍高義後人歎)”라는 내용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양반 및 중인층이 주요한 판소리 향유층으로 등장하는 19세기에 이르러 〈적벽가〉는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로 널리 불리게 되었다. 특히 양반층의 애호를 많이 받았으며, 가객이나 중인층의 연희 공간에서도 〈적벽가〉는 인기가 높았다. 천하를 다투는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심사와 부합했으며, 남성적이고 장중한 소리 대목이 비교적 많다는 점도 그들의 미의식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적벽가〉의 인기가 높았던 만큼, 19세기 전반에 이름을 날렸던 송흥록(宋興祿)․모흥갑(牟興甲)․방만춘(方萬春)․주덕기(朱德基) 등 다수의 명창들도 〈적벽가〉에 능했다. 그런데 《조선창극사》에 〈적벽가〉를 장기로 삼았다고 소개된 명창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동편제 내지는 중고제에 속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동편제는 씩씩한 창법과 웅장한 우조를 위주로 하되 별다른 기교 없이 대마디대장단으로 소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음악적 특성이 〈적벽가〉의 가창에 어울렸기 때문에, 동편제에 속하는 명창들이 〈적벽가〉를 특히 즐겨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또 비가비광대로 알려진 명창들이 특히 〈적벽가〉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들은 출신상 한문투의 표현이 많은 사설을 구사하고, 장중한 음악적 미감을 표현해내는 데 있어 비교적 유리한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19세기 이후 〈적벽가〉에는 긍정적 영웅들의 형상이 강화되고 조조가 골계적인 인물로 격하되는 변모가 나타났으며, ‘새타령’, ‘군사설움 대목’ 등 음악적으로 수준 높은 소리 대목들이 더늠으로 첨가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적벽가〉의 전승은 다소 위축되기 시작했다. 조선사회에서는 〈적벽가〉가 양반 식자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지만, 신분제가 점차 해체되면서 주요 판소리 향유층의 구성이나 취향에도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에 〈적벽가〉보다 〈춘향가〉, 〈심청가〉 등이 더 인기 있는 소리가 되었다. 여성 판소리 창자들 다수가 이 시기에 등장한 것도 〈적벽가〉의 전승에 영향을 미쳤다. 〈적벽가〉는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어지간한 공력 없이는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이른바 ‘센 소리’에 속한다. 서정성이 강한 ‘군사설움 대목’의 경우는 여성 창자들이 종종 부르기도 했으나, 여성 창자가 〈적벽가〉 전체를 완창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따랐다. 한편 20세기에 들어 웅장하고 호탕하면서도 고졸한 동편제의 창법보다 애련하고 처절한 계면조를 위주로 한 서편제의 창법이 더 인기를 얻게 된 상황도 〈적벽가〉 전승의 위축과 관련이 있다. 〈적벽가〉는 꿋꿋한 우조 위주의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소리의 전승환경이 이처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적벽가〉는 창극으로 공연되고, 무대에서 토막소리로 불리기도 하며 현대 판소리로 계승되었다.
〈적벽가〉는 197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박동진(朴東鎭, 1916-2003), 박봉술(朴奉述, 1922-1989), 한승호(韓承鎬, 1924-2010), 송순섭(宋順燮, 1939- )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내용 및 특성】
박봉술, 송순섭, 김일구(金一球, 1940- ) 등에게 전수된 송만갑(宋萬甲, 1865-1939) 바디 〈적벽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비, 장비, 관우가 도원결의로 형제의 의를 맺고, 제갈공명을 찾아간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낮잠을 자면서 일행을 기다리게 하고, 이에 성격이 불같은 장비는 초당에 불을 지르려고 달려든다. 유비는 장비를 진정시킨 후, 공명에게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뜻을 밝힌다. 공명은 처음에 거절하는 의사를 밝히나, 유비의 진심어린 설득 끝에 그의 책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편 조조는 하후돈과 조인의 패배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출정한다. 유비는 조조 대군에 밀려 후퇴하면서 조자룡에게는 자신의 가솔을, 장비에게는 백성들을 부탁한다. 조자룡은 미부인과 아두를 찾아내지만, 전쟁 중에 두 사람의 목숨을 의탁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미부인은 아두를 부탁한 뒤 우물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장비는 백성들을 무사히 피신시키고, 장판교 대전을 승리로 이끈다. 오나라에서는 공명의 높은 이름을 듣고 노숙을 보내 그를 회유하고, 이를 예상하고 있던 공명은 유비를 안심시킨 뒤 떠난다. 이때 조조는 장강에 진을 치고 미리 승리를 기뻐하면서 자축하는 잔치를 벌인다. 전쟁에 끌려나온 병사들은 술에 취해 각자의 억울한 사연과 심정을 토로하고, 어떤 군사는 설움을 늘어놓는 다른 군사들을 꾸짖으며 전쟁에 나선 남아로서의 포부를 밝힌다. 이때 까마귀 한 마리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한 장수가 불길조(不吉鳥)라고 예측하자, 조조는 그를 죽인다. 한편 주유는 화공(火攻)을 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남풍이 필요한데, 별다른 방법이 없어 고민에 빠지고 결국 병을 얻는다. 이때 노숙과 함께 주유를 찾아온 공명은 자신에게 동남풍을 불게 할 계책이 있다고 말한 뒤, 남병산에 올라가 칠성단을 쌓고 제를 지낸다. 동남풍이 불어오는 것을 확인한 공명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조자룡을 따라 자리를 뜬다. 주유는 공명의 계책을 의심했지만, 정말 동남풍이 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공명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감지한다. 위협을 느낀 주유는 서성과 정봉에게 공명을 죽이라는 명을 내리지만, 뒤따라오던 두 장수는 조자룡의 활솜씨에 놀라 달아난다. 주유는 우선 조조부터 치기로 하고, 서둘러 출정한다. 돌아온 공명은 조조의 패주를 예상하고 그 퇴로까지 막고자 한다. 장비는 오림산 좁은 길에 매복하기로 하고, 관우는 만약 조조를 잡아오지 못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군령장을 올린 뒤 화용도로 간다. 이때 조조 진영 앞에 황개 장군의 화선이 도착하고, 조조의 책사 정욱은 만약 황개가 양초를 싣고 온다면 선체가 묵직할 텐데 둥덩실 떠서 오므로 수상하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이미 황개 장군의 신호로 화공이 시작되고, 조조의 백만 대군은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만다. 주유 군사에 크게 패하고 정욱과 함께 도망가던 조조는 작은 메추리에도 놀라 방정을 떤다. 적벽강에서 죽은 군사들의 원혼은 새가 되어 울고, 조조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실없이 웃는다. 조조의 웃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자룡이 나타나고, 그는 서둘러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호로곡으로 도주한다. 조조가 가는 길에 또다시 실없이 웃자, 정욱은 조조가 웃으면 꼭 복병이 나타난다며 걱정한다. 정말로 그곳에 매복해 있던 장비가 나타나 호령하자, 조조는 갑옷까지 벗어던지고 군사들에 섞여 도망한다. 정욱이 복병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큰 길로 가야한다고 말하지만, 조조는 듣지 않는다. 화용도로 들어가던 조조는 장승을 장비로 착각하고, 장승이 감히 자신을 속였다며 군법(軍法)으로 잡아들이라 명한다. 그러자 장승은 잠깐 졸던 조조의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놀라서 잠이 깬 조조는 장승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세울 것을 명한다. 조조는 술에 취해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공명 등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다가, 정욱에게 군사 점고를 시킨다. 그러자 겨우 살아남은 허무적이, 골래종이, 전동다리, 구먹쇠 등이 차례로 등장해 조조를 비판한다. 화용도에 들어선 조조는 또 방정맞게 웃고, 그러자 잠복해 있던 관우와 그의 군사들이 나타난다. 조조는 정욱의 제안을 받아들여 관우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관우는 조조와 그의 군졸들을 놓아주고, 본국으로 돌아가 공명에게 이 일을 알린다. 그러자 공명은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니므로, 이전에 조조의 은혜를 입었던 관우를 그곳에 보낸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적벽가〉의 주제는 충과 의의 강조, 조조로 대표되는 지배층에 대한 풍자, 군사들로 대표되는 빈한한 평민들의 안정적인 삶 추구, 전범적인 영웅에 의한 질서의 회복 등으로 해석된 바 있다. 초기 〈적벽가〉는 평민층의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형태였으나, 19세기 이후 양반이나 중인층, 비가비광대 등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영웅상이 부각되면서 장중미가 점차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모했다.
본래 〈삼국지연의〉는 군사 개개인의 존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소설이다. 그러나 〈적벽가〉에는 이들이 조선후기 사회의 평민층들을 대변하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군사들의 소망은 지배층의 개인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전쟁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안정적인 삶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데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야욕을 위해 평민층의 삶을 곤궁하게 만든 지배자 조조는 군사들에 의해 원망과 조롱의 표적이 된다. 따라서 조조를 왜소한 인물로 만들어 그의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고 비꼬는 의식은 군사들, 원조(怨鳥), 장승의 목소리를 통해 표출되는 평민층의 울분과 동질적인 것이다. 이로부터 초기 〈적벽가〉의 주제를 개인적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힘없는 군사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조조에 대한 부정과 비판, 안정적인 삶의 공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서민들의 소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적벽가〉의 형성과 전승을 주도했던 천민 계급의 판소리 창자들이 실제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체험들도 녹아 있다.
19세기 이후에는 ‘삼고초려’, ‘공명 동남풍 비는 대목’, ‘조자룡 활 쏘는 대목’ 등 긍정적 영웅상과 관련된 〈적벽가〉 사설이 정형화 혹은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적벽가〉의 주제도 전범적 인물을 통한 질서의 회복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모되어 갔다. 여기서 ‘전범적 인물’이란 패악스럽지 않고 인후한 품성의 소유자로, 불의한 지배층을 징치함으로써 하층의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구원적 인물’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징치보다는 화해의 의미가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전범적 인물’은 평민층은 물론 양반층 향유자들에게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다.
현재 전승되는 판소리 다섯마당과 창이 실전된 판소리 일곱마당은 미의식의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전자가 미의식의 균형을 추구한 작품들이라면, 후자는 미의식이 불균형을 이루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현전 판소리 작품 대부분은 비장미나 골계미 일변도로 흐르는 일이 없으며, 한쪽으로 치우치는 듯하다가도 결국에는 다른 편 미의식과의 조화를 보여준다. 그 어떤 비극적인 상황에 놓이더라도, 대부분은 행복한 결말로 귀결되는 것이다. 〈적벽가〉의 작품 전반부와 후반부는 크게 비장과 골계의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결말에 이르러서는 간웅 조조가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조조를 놓아준 관우가 의로운 영웅으로 칭송되는 축제적 분위기까지 연출된다. 〈적벽가〉에서는 악인형 인물로 분류되는 조조마저 결국 용서를 받고 축제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일조한다.
〈적벽가〉의 주요 등장인물은 조조, 정욱, 유비, 관우, 제갈공명, 그리고 이름 없는 다수의 군사들이라 할 수 있다. 조조는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곤궁하게 만드는 지배층으로 형상화되는 인물이다. 실제 역사상의 조조는 이름 높은 영웅이나, 〈적벽가〉의 조조는 비판과 조롱, 야유의 대상이자 무책임하고 잔인하며, 허례와 위선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전쟁 전에는 부하들의 인심을 얻지 못하고, 전쟁에 패한 후로는 부하들에게 조롱당하며, 억울하게 죽은 병사들의 원혼인 새들에게 비판받고, 가장 믿었던 부하인 정욱마저 그를 놀려댄다. 그는 어리석은 ‘간웅(奸雄)’ 조조로, 철저히 희화화된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후 패주하는 과정에서, 조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골계적인 인물로 추락한다. 한때는 큰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영웅이지만, 이들 대목에 이르러서는 눈 앞의 상황조차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망스러운 범인(凡人)으로 형상화된다. 19세기 이후에 첨가된 ‘조조 도망사설’․‘메초리 사설’ 등을 통해, 조조에 대한 골계화가 〈적벽가〉 형성기에는 물론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조 도망사설’은 〈춘향가〉 중 임창학의 더늠으로 전하는 ‘어사출도’가 〈적벽가〉에 수용된 것이며, ‘메초리 사설’은 화용도로 도망가던 조조가 푸드득 날아오른 작은 메추리 한 마리에 깜짝 놀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모두 조조를 궁지로 몰아넣고,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는 대목들이다.
정욱은 〈적벽가〉 전반부에서는 조조가 가장 신임하는 부하로 엄숙함을 유지하나, 후반부에 이르러 가장 적극적으로 조조를 조롱하고 비웃는 인물로 나타난다. ‘조조 패주 대목’을 전후로 그 성격 및 역할이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의 정욱은 조조가 가장 신임하는 뛰어난 인물도 아니었으며, 조조를 조롱하거나 비웃는 일도 없었다. 불의한 권력과 지배층을 상징하는 인물인 조조의 측근에서 그를 매도하고 희화화하는 인물로 형상화된 것은 〈적벽가〉에서 나타난 변화라 할 수 있다. 〈적벽가〉의 정욱은 겉으로는 상전에 복종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조롱한다는 점에서, 〈춘향가〉의 방자, 〈봉산탈춤〉의 말뚝이 등과 같은 방자형 인물로 볼 수 있다.
유비는 천하 획득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인물로, 유비와 같은 인물상의 구현에는 긍정적인 영웅의 활약을 통해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던 평민층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삼국지연의〉의 유비는 재덕과 용맹을 두루 겸비한 인물로,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현인(賢人)들을 예로써 대우했다. 〈적벽가〉의 유비 형상도 이와 동일하다. 제왕다운 아량과 풍모를 지닌 인물로, 유능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등용할 줄 알며, 인애(仁愛)와 후덕함으로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는다. ‘삼고초려 대목’은 유비의 긍정적인 영웅상을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소리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관우는 충의(忠義)를 대표하는 인물로, 용맹과 무예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영웅이다. 중국 삼국 시대에 용맹을 떨쳤던 인물인 관우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재신(財神) 혹은 무신(武神)으로 신격화되었고, 중국의 관우신앙은 임진왜란 중 명나라 장수들에 의해 관왕묘(關王廟)가 세워지면서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었다. 관우는 외적의 침범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주는 신령으로 숭배되었고, 이러한 인식은 〈적벽가〉에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특히 조조와 그 장수들을 사로잡았다가 놓아주는 〈적벽가〉의 결말을 통해, 관우는 불의한 인물을 징계하고, 약자를 구하는 의로운 존재로 부각된다.
제갈공명은 충절과 지혜를 표상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공명은 뛰어난 전략가로, 책임감이 강할 뿐만 아니라 문장과 서화, 탄금(彈琴)에도 두루 능한 인물로 그려졌다. 〈적벽가〉에서도 공명은 지혜로운 전략가로 등장해 유비의 책사로 활약한다. 조조와 손권 사이에 싸움을 일으키기 위해 손권과 잠시 손을 잡는 계략을 도모하고, 신출귀몰한 재주로 동남풍을 불게 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다. 특히 ‘동남풍 비는 대목’에서, 지모와 예지를 겸비한 신이한 능력의 소유자로서의 공명상이 크게 부각된다.
〈적벽가〉에는 이름 없는 다수의 군사들이 등장한다. 〈삼국지연의〉가 왕후장상의 이야기, 영웅 중심의 이야기라면, 〈적벽가〉는 원작 〈삼국지연의〉에서 그저 이름 없는 군상(群像)에 불과했던 군사들이 등장해 직접 자기 목소리를 표출하는 이야기이다. 군사들은 적벽대전 직전의 ‘군사설움 대목’과 적벽대전 이후의 ‘군사점고 대목’에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고유명사를 지닌 특정 개인으로 나오기보다, 직책이나 신체적 특징으로 붙은 별명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들의 발언이나 행동은 특정한 개인 누구의 것이 아닌, 보통명사로서의 군사들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군사설움 대목’에는 나이 많은 부모를 걱정하는 군사, 조실부모하고 늦게나마 결혼해 얻은 처를 염려하는 군사, 오대 독자로 마흔 넘어 낳은 어린 아들을 그리워하는 군사, 어려서 부모를 잃고 유리걸식하며 지내다 드디어 처를 얻었으나 첫날밤을 보내려던 차에 강제로 끌려온 것을 서러워하는 군사, 전쟁 중에 죽어도 묻어줄 사람이 없다며 슬퍼하는 군사, 이런 저런 탄식 말고 전쟁에서 승리할 생각만 하자고 말하는 군사 등 여러 인물 군상들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들은 권력자들만을 위한 명분 없는 전쟁으로부터 어서 빨리 벗어나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할 뿐이다. ‘군사점고 대목’을 살펴보면, 팔이 부러지고 다리에는 화살을 맞은 허무적이, 뼈 속에 종양이 생긴 골래종이, 상처 하나 없이 사지 멀쩡하게 나타난 전동다리 등 점고에 불려가는 군사들의 형상도 가지각색이다. 조조를 죽일 놈에 빗대어 욕을 하기도 하고, 절을 올리는 대신에 배를 쑥 내밀어 조조를 무시하기도 한다. 전쟁을 하다 말고 도망 다닌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하고, 무기를 팔아 아내에게 줄 바늘을 사려했다고 밝히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부조리한 지배층으로 표상되는 조조에 대한 반감을 직설적으로 쏟아낸다.
〈적벽가〉의 대표적인 눈대목으로는 ‘삼고초려’, ‘군사설움 대목’, ‘조자룡 활 쏘는 대목’, ‘적벽화전’, ‘새타령’, ‘군사점고 대목’ 등이 있다.
‘삼고초려’는 중고제 명창 김창룡(金昌龍, 1872-1935)의 더늠으로,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제갈공명을 맞고자 그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간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적벽가〉는 ‘삼고초려’의 유무에 따라 크게 〈민적벽가〉와 일반 〈적벽가〉의 계열로 나뉜다. 본래 송만갑이나 유성준(劉成俊, 1873-1944)의 동편제 〈적벽가〉는 ‘삼고초려’가 없는 〈민적벽가〉였으나, 임방울(林芳蔚, 1904-1961) 창본을 제외한 여타의 동편제 〈적벽가〉에서는 다른 바디를 참조해 ‘삼고초려’를 새로 넣었다. 정광수는 이동백(李東伯, 1866-1949) 바디에서, 박봉술은 김채만(金采萬, 1865-1911) 바디에서 불리는 ‘삼고초려’를 자신의 창본에 넣었다. 초기 〈적벽가〉는 ‘삼고초려’가 아예 없거나 혹은 아주 간단한 사설로 된 형태였으나, 김창룡에 이르러 오늘날 불리는 ‘삼고초려’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삼고초려’ 중 특히 ‘유관장 인물치레’는 공명을 찾아가는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의 늠름한 모습이 장중한 우조로 잘 표현된 부분이다.
‘군사설움 대목’은 조조의 군사들이 고향이나 가족을 그리워하며, 전쟁에 억지로 끌려나온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박기홍(朴基洪)의 더늠으로 전하는 ‘군사설움 대목’은 평민들의 설움과 고난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적벽가〉의 백미로 꼽힌다. 박기홍보다 생존연대가 앞서는 신재효(申在孝, 1812-1884)의 개작 사설 〈화용도(華容道)〉에도 ‘군사설움 대목’이 나타나있다는 점에서, 박기홍의 ‘군사설움 대목’은 기존의 사설을 더늠으로 발전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군사설움 대목’의 사설은 매우 골계적이면서도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은 주유가 보낸 서성과 정봉 두 장수가 공명을 잡기 위해 따라오자, 조자룡이 활을 쏘아 그들을 쫓아 보내는 장면을 노래한 소리대목으로, 자진모리장단에 우조로 되어 있다. 《조선창극사》에 주덕기의 더늠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창본이나 창본 계열의 소설본에 들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성되었다가 주덕기에 이르러 더늠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적벽화전’은 오나라 군사들이 지른 불이 동남풍을 타고 번져 적벽강에 있던 조조의 백만 대군이 꼼짝없이 몰살당한다는 내용의 소리대목으로, 역시 자진모리장단에 우조로 되어 있다.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의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적벽화전’은 방만춘의 더늠인데, 그가 이 대목을 부르면 소리판이 온통 불바다가 되는 듯했다고 한다.
‘새타령’은 적벽화전에서 죽은 군사들이 원조(怨鳥)가 되어 자신들의 절박한 처지와 원한, 적벽화전의 전투상황 등을 노래한 중모리장단의 소리대목이다. 그로테스크한 미감과 비장미, 비극미가 특히 두드러진다. 《조선창극사》에서 이창운의 더늠으로 소개되었으며, ‘원조타령’이라고도 불린다. 신만엽(申萬葉)은 중모리로 잡가 〈새타령〉을 변형시켜 불렀으며, 중고제의 김창룡은 세마치 장단에 곡을 붙였다. 동편제 명창인 송만갑과 이선유(李善有, 1873-1949)는 〈적벽가〉에서 중모리장단의 ‘새타령’을 불렀는데, 현행 ‘새타령’ 역시 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다. ‘새타령’은 오랜 세월 여러 명창들에 의해 다듬어져 완성된 소리대목이다. 현재 송만갑의 동편제식 ‘새타령’과 임방울․박봉술의 또 다른 동편제식 ‘새타령’, 한승호의 서편제식 ‘새타령’이 전승되고 있다.
‘군사점고 대목’은 복병들에게 계속 공격당하면서 패주하던 조조가 화용도로 들어가기 직전 정욱에게 남은 군사가 얼마인가 헤아려 보라고 명한 후, 그 보고를 듣는다는 내용의 소리대목이다. 원작인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본래 없었던 삽화이나, 이선유의 《오가전집》, 박헌봉의 《창악대강》,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 수록된 〈적벽가〉 창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판소리 창본에 삽입되어 있을 정도로 전승이 활발한 대목이다. 사설의 구성과 전개 방식이 〈춘향가〉의 ‘기생점고’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깊은 영향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군사점고 대목’에는 추락한 영웅인 조조가 보여주는 희극미, 조조에 맞서는 군사들의 공격적인 풍자와 골계적인 해학도 담겨 있지만, 그 웃음의 기저에는 비극적인 비애미가 자리잡고 있다.

【연희본】
〈적벽가〉 주요 연희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⑴ 이선유 창본 〈화용도〉: 이선유는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동편제 명창이다. 그의 〈적벽가〉는 송우룡(宋雨龍)에게 전수받은 동편제 바디로, 1933년 김택수(金澤洙, 1895-1976)가 펴낸 이선유의 판소리 사설집인 《오가전집》에 〈화용도〉라는 제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소리대목마다 이름을 붙이고, 장단을 적어놓았다. ‘초앞’은 신재효의 영향을 받은 정권진(鄭權鎭, 1927-1986) 창본과 유사하며, ‘삼고초려’는 다른 〈적벽가〉 바디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출처를 알 수 없다. 조조에 대한 골계적인 희화화나 군사들의 감정을 표현한 서술이 여타의 창본들에 비해 미미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선유 창본의 특징이다. ‘군사설움 대목’이 매우 간략하고, ‘군사점고 대목’이 아예 없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⑵ 김연수 창본 〈적벽가〉: 김연수(金演洙, 1907-1974)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명창으로, 동초제의 법제를 마련했다. 〈적벽가〉는 정정렬(丁貞烈, 1876-1938)에게서 배웠으며, 김창룡 바디․이동백 바디 등 다른 바디의 〈적벽가〉 및 신재효의 개작 사설 〈화용도〉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판소리 사설에 오자와 와전이 많은 것에 문제를 느껴 이를 바로 잡고, 한문어구를 한자로 표기한 창본집을 발간했다. 그의 〈적벽가〉 창본은 《창본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문화재관리국, 1974)에 실려 있다. 아니리와 창을 분리하고 장단을 표기하는 한편, 창 첫머리에 도창에 해당하는 ‘효과’라는 뜻의 [효], 공명이 부르는 대목이라는 뜻의 [공], 조조가 부르는 대목이라는 뜻의 [조], 군사들이 부르는 대목이라는 뜻의 [군] 혹은 [군一]․[군二]․[군三]…과 같은 기호를 붙였으며, 장단상의 기교를 ○, ×, △, ▲ 와 같은 음악 부호로 설명했다. 김연수의 창본에는 오랜 기간 창극 활동에 참여했던 그의 경험이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다. 다른 〈적벽가〉 창본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새타령’이다. 대부분의 창본에서는 ‘적벽 화전’ 바로 뒤에 ‘새타령’이 삽입되는데, 김연수 창본에는 ‘군사점고 대목’과 ‘관우가 조조 잡으러 나오는 대목’ 사이에 있다. 적벽강에서 죽은 군사들의 원혼이 새가 되어 울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본 김연수의 이면관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⑶ 정권진 창본 〈적벽가〉: 정권진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명창으로, 정재근(鄭在根)-정응민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 집안의 후손이다. 박유전(朴裕全, 1835-1906)-정재근-정응민으로 계승된 〈적벽가〉를 전수받았으며, 뿌리깊은 나무 편 《판소리 다섯마당》(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87)에 창본이 실려 있다. “천하 합구즉분하고 분구즉합이라…”로 시작되는 ‘초앞’ 부분의 아니리는 신재효 개작 사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창본과 비교해 ‘군사점고 대목’이나 ‘군사설움 대목’에는 등장하는 군사의 수가 많다. 또 정권진 창본에서 세마치 장단으로 부르는 대목이 다른 창본에는 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⑷ 한승호 창본 〈적벽가〉: 한승호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명창으로, 이날치-김채만-박동실(朴東實, 1897-1968)로 이어지는 서편제 〈적벽가〉를 전수받았다. 그의 창본은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82(문화재관리국, 1971)에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적벽가〉는 동편제적인 특징을 살려 대마디대장단으로 통성을 내지르는 우조 위주의 소리, 엄성을 사용해 장수들의 호기와 기백을 표현하는 소리로 인식되어 왔다. 여전히 이러한 인식이 일부 통용되고 있는 가운데, 한승호는 계면 위주의 소리로 개성적인 〈적벽가〉를 불러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서두의 ‘도원결의’를 진양조장단으로 부르며, ‘장판교 대전’이 다른 창본에 비해 자세한 편이다. 대목의 구성 순서를 살펴보면, 공명이 남병산에 올라 동남풍 불기를 빌고 자룡과 돌아가는 대목 뒤에 조조의 군사들이 술에 취해 각자의 설움을 토로하는 대목, 황개의 화선이 적벽강에 불을 지르는 대목이 이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어 특징적이다.
⑸ 박동진 창본 〈적벽가〉: 박동진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판소리 명창이다. 박기홍-조학진(曺學珍, 1877-1951)으로 내려온 〈적벽가〉를 배웠으나, 그가 부른 다른 판소리 작품들의 성격을 감안할 때, 개인적인 윤색이나 다른 바디의 삽입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 완창 공연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데, 〈적벽가〉는 1971년에 발표했다. 1988년에 나온 《인간문화재 박동진 판소리 대전집》에 〈적벽가〉 창본이 수록되어 있다. 박동진 창본의 특징은 삽입가요나 〈삼국지연의〉의 사설을 풍부하게 수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이 죽었다고 알리라 명하는 조조를 향해 정욱이 그런 얕은 꾀를 쓰지 말라고 비꼬는 ‘조조 꾀사설’은 박봉술 창본과 유사하며, 관우가 아닌 공명의 예지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된 ‘뒷풀이’는 김연수 창본과 비슷하다.
⑹ 정광수 창본 〈적벽가〉: 정광수(丁珖秀, 1909-2003)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서편제 명창으로, 송우룡-유성준으로 내려온 〈적벽가〉를 전수받았다. 정광수는 직접 판소리 다섯마당 사설의 오자와 와전을 바로 잡은 사설집을 발간했다. 그의 〈적벽가〉 창본은 《전통문화오가사전집》(문원사, 1986)에 실려 있다. 아니리와 창을 나누는 한편 장단을 밝혔으며, 장단 옆 괄호에 조(調)를 표기했다.
⑺ 박봉술 창본 〈적벽가〉: 박봉술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던 동편제 명창이다. 송만갑-박봉래로 이어지는 동편제 바디의 〈적벽가〉를 전수받았다. 그의 〈적벽가〉 창본은 정병욱의 《한국의 판소리》(집문당, 1981)에 실려 있다. 박봉술 창본 〈적벽가〉는 본래 ‘삼고초려’가 없는 〈민적벽가〉였다. 현전하는 박봉술 창본의 ‘삼고초려’는 박유전-이날치(李捺致, 1820-1892)-김채만-박동실로 이어지는 서편제 계열 〈적벽가〉의 ‘삼고초려’를, 김동준(金東俊, 1928-1990)을 통해 차용한 것이다. 강산제나 동초제 〈적벽가〉에는 없는 ‘당양싸움’과 ‘장판교 대전’ 두 대목이 모두 삽입되어 있어 특징적이다.
⑻ 임방울 창본 〈적벽가〉: 임방울은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유성준에게 동편제 〈적벽가〉를 전수받았다. 1957년 국립국악원 연주실에서 완창한 〈적벽가〉가 실황 녹음으로 남아 있다. 천이두의 《판소리명창 임방울》(현대문학사, 1986), 김혜정의 《국창 임방울 수궁가․적벽가 채보집》(임방울국악진흥재단, 2004), 《국창 임방울 판소리 대전집》5-6(탑예술기획, 2010)에 그의 창본이 수록되어 있다. 임방울 창본의 가장 큰 특징은 ‘삼고초려’가 없는 〈민적벽가〉라는 점이다. 동편제 계열의 〈적벽가〉를 전수한 정광수나 박봉술이 후대에 다른 바디에서 ‘삼고초려’를 가져온 사실을 감안할 때, 〈민적벽가〉는 〈적벽가〉의 전승사에서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고형(古形)에 해당하는 내력 있는 소리라 할 수 있다.
⑼ 송순섭 창본 〈적벽가〉: 송순섭은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된 판소리 명창이다. 송만갑-박봉래-박봉술로 이어지는 동편제 바디 〈적벽가〉를 전수했으며, 《(동편제)적벽가 창본》(민속원, 2004)에 그의 창본이 실려 있다.

【역대 명 연희자】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방만춘이 ‘적벽화전’, 주덕기가 ‘조자룡 활 쏘는 대목’, 김창록(金昌祿)이 ‘오작 남비(烏鵲南飛) 대목’, 서성관(徐成寬)이 ‘공명이 동남풍을 빌고 남병산 아래로 내려가는 대목’, 이창운(李昌雲)이 ‘새타령’, 박기홍이 ‘군사설움 대목’, 김창룡이 ‘삼고초려’를 장기 혹은 더늠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이외에 송흥록, 모흥갑, 박유전, 박만순(朴萬順, 1830?-1898?), 박상도(朴尙道), 정춘풍(鄭春風), 김창환(金昌煥, 1855-1937), 송만갑, 이동백, 신명학(申明學), 정학진(丁學珍, 1847-1919), 김정길(金正吉, 1875-1964), 조기홍(趙寄弘), 조학진, 장판개(張判盖, 1885-1937), 유성준, 김정문(金正文, 1887-1935), 공창식(孔昌植, 1887-1936), 임방울, 강장원(姜章沅, 1909-1962), 강용환(姜龍煥, 1865-1938), 정정렬 등이 〈적벽가〉를 잘 불렀다고 전한다.
현재 〈적벽가〉는 정응민 바디, 유성준 바디, 송만갑 바디, 김연수 바디, 조학진 바디 등이 전승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정응민 바디는 서편제 계열, 유성준 바디와 송만갑 바디는 동편제 계열, 조학진 바디는 중고제 계열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승호가 전수한 서편제 계열의 박동실 바디도 있으나, 거의 전승되지 않고 있다.
〈적벽가〉의 중요무형문화재 및 시․도무형문화재의 예능보유자․전수조교 인정 상황은 다음과 같다. 박동진․박봉술이 1973년, 한승호가 1976년, 송순섭이 2002년에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김일구가 1992년, 강정자(姜貞子, 1942- )가 1993년, 김양숙(金陽淑, 1964- )이 1994년에 전수조교로 인정되었다.
정미옥(鄭美玉, 1928- )이 1992년, 민소완(閔小完, 1944- )이 1996년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의의】
〈적벽가〉는 유일하게 〈삼국지연의〉라는 외국소설을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판소리 작품으로, 전통사회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남성 영웅들의 쟁패를 다룬 〈적벽가〉는 공력을 들여 소리해야 제맛이 나는 어렵고 진중한 소리로, 양반층의 취향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박동진 명창의 전언에 따르면, 과거에는 〈적벽가〉 잘하는 명창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그래서 소리꾼이 소리를 하러 가면, 먼저 “적벽가를 할 줄 아시오?”라고 공손히 물었다. 부르지 못한다고 대답하면 “춘향가 할 줄 아는가?”라고 말투를 낮추어 묻고, 역시 부르지 못한다고 대답하면 “심청가 할 줄 아냐?”라고 하대해 물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적벽가〉는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소리였다.
〈적벽가〉는 우조 위주로 당당하고 진중하게 부르는 대목이 많아, 소리꾼들은 흔히 소리하기가 ‘되고 팍팍하다’라고 말한다. 어지간한 공력을 쌓은 명창이 아니면 〈적벽가〉를 제대로 소화해 내기 어려운 것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전승이 위축된 면도 없지 않으나, 여전히 고졸하고 웅장한 동편제의 멋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리로 평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적벽가〉는 창극, 마당놀이, 창작극 등의 갈래로 재창조되면서 새로운 의미 영역을 개척하고 있으며, 전쟁을 소재로 한 창작판소리 사설의 형성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김기형, 〈적벽가의 역사적 전개와 작품 세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김상훈, 〈적벽가의 이본과 형성 연구〉, 인하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김진영 외, 《적벽가 전집》, 박이정, 1998-2003.
최동현․김기형 엮음, 《적벽가 연구》, 신아출판사, 2000.
김종철, 〈〈적벽가〉의 대칭적 구조와 완결성 문제〉, 《판소리연구》 22, 판소리학회, 2006.
서종문, 〈신재효본 적벽가에 나타난 작가의식〉, 《국어국문학》 72․73, 국어국문학회,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