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사전을 편찬하고 인터넷으로 서비스하여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와 일반 독자들이 왕조실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학술 문화 환경 변화에 부응하고 인문정보의 대중화를 선도하여 문화 산업 분야에서 실록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어영대장(御營大將)

서지사항
항목명어영대장(御營大將)
용어구분용어용례
동의어어장(御將)
관련어군제(軍制), 군영(軍營), 군문(軍門), 삼군문(三軍門), 오군영(五軍營), 훈련도감(訓鍊都監), 어영청(御營廳), 금위영(禁衛營), 훈국(訓局), 숙위(宿衛), 도성(都城), 유도대장(留都大將), 수가대장(隨駕大將), 인조반정(仁祖反正), 어영사(御營使)
분야정치
유형직역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정보화실


[정의]
조선후기 오군영의 하나로 인조대에 설치한 어영청의 대장.

[내용]
인조가 반정을 기도하던 1623년(인조 1) 이귀(李貴)가 개성의 유수(留守)로 있으면서 반정을 위해 모집한 군사 가운데 용감하고 건장한 이들을 뽑아 화포(火砲)를 가르치고, 어영군(御營軍)이라 이름하였으며, 이때 이귀를 초대 어영대장(御營大將)으로 임명하였다. 1624년 어영청으로 군문이 설립되었으며, 1628년(인조 6) 구인후(具仁垕)를 어영대장으로 삼고 하나의 국(局)을 두어 교련을 전적으로 관장하도록 하였다. 1652년(효종 3) 이완(李浣)을 대장으로 삼았는데, 비로소 군영(軍營)을 세우고는 보인(保人)을 정하여 베를 거두어 군사 양성의 비용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어영대장은 훈련도감과 금위영의 대장과 같이 삼군문의 대장으로 도성의 방어는 물론 궁궐의 숙위까지 담당하던 수도방위의 책임자였다. 또한 국왕의 행행을 수행하던 수가대장(隨駕大將)의 임무도 맡았다. 따라서 어영대장은 어영청이 설립되던 초기부터 왕권을 보위하는 무력을 담당하는 정치적인 지위였다.

[용례]
敎曰 親軍諸營 卽宿衛之任 所重自有別焉 監督之稱 不過一時權宜也 現今軍容稍成 營制頗定 稱號改爲親軍營使 以曾經將任人差除 營中文牒 一依御營使之稱御營大將例 所佩符信虎符及傳令牌造給 以爲定式 以前營監督韓圭稷爲前營使 左營監督李祖淵爲左營使 禁衛大將閔泳翊爲右營使 右營監督尹泰駿爲後營使[『고종실록』 21년 8월 26일]

[참고문헌]
■ 『임하필기(林下筆記)』

■ [집필자] 이왕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