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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공산당에 관한 강진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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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서지사항
· 표제어남조선공산당에 관한 강진의 편지
· 키워드강진, 샤닌, 남조선공산당, 박헌영
· 대표주제어남조선공산당
· 설명문강진 자신은 당내 통합을 우선시하나, 박헌영이 파벌을 만들어 당을 분열시키고 있다.
· 발신자알렉세예프
· 수신자샤닌
· 자료문의동국대학교팀(연구책임자:박명호 교수)

문서 해제



산출물명: ЦАМО,ф.172,оп.614631,д.18,лл.15-32.
자료구분: 필사
저작권자: 러시아연방국방부중앙문서보관소
원자료언어: Компартия Южной Кореи
면수: 18
발신일: 1946.09.30.
수신일: 1946.10.02.

번역문


〈남조선공산당에 관한 강진의 편지〉

극비.

제25군 참모장, 소장 샤닌(Шанин) 동지에게.

남조선공산당의 반대파 지도자 중 한 사람인 강진이 당 내부 문제에 관해 쓴 편지를 보냅니다.
첨부: 편지 17장.

군 참모본부 정찰총국 작전반장, 소좌 (알렉세예프)

제68/сс호.
1946년 9월 30일.
일 제국주의에 대한 귀하의 지난 투쟁과, 조선의 완전한 민주적 독립과 민주주의 발전 실현을 위한 모든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틀림없이 조선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 근거가 될 북조선의 돌진적인 건설사업을 진심으로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진보적인 시작들은 위대한 스탈린과 저희 조국의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발전을 직접 지휘하는 그의 볼셰비키 동지들의 지도 하에서만 가능합니다. 붉은군대 지도자들의 모든 노고에 대해 순결한 마음으로 진정 감사를 표합니다. 그들의 선의와 저희 민족에 대한 우의를 저희 인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에트 인민과 조선 민족의 우정은 더 단단하고 깊어져 조선 민족 사이에 소련 친구들이 무수하게 훨씬 더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국제적 사건들은 전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소련을 위시한 민주주의 진영과 미 제국주의를 위시한 반동 진영이 그것입니다. 이제 각 나라의 그 어떤 민족해방이나 그 어떤 민주주의 발전도 소련의 도움 없이는, 그리고 소련과의 행동 조율 없이는 빠르게 실현될 수 없습니다. 소련을 중심으로 모든 국제 민주주의‧민족해방 세력들이 단결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진보를 위해 세계적인 제국주의 공세와 투쟁하는 근본적인 길입니다.
소련과 연합해 반동세력과 투쟁하는 데 있어 소련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 이런 국제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투쟁방법은 각 나라의 모든 민주주의 세력이 소련의 실제 정책과 최대한 실질적으로 조율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각 개인이나 집단뿐 아니라 각 민족의 민주인민 전체, 모든 민주세력이 소련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조선의 모든 혁명‧진보 세력은 소련과 소비에트 지도자들이 영도하는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이런저런 형태로 단결해야 합니다.
확신하건대, 틀림없이 북쪽 동지들도 소련의 혁명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민주주의 세력 내 여러 파벌들의 지지와 그에 따른 ‘자신들’끼리의 모순 격화와 심화가 아니라, 각 당의 단결과 현재 북조선 진보운동을 중심으로 한 모든 인민세력의 통일이라는 원칙일 것입니다. 올바른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는 현재의 세력들과 작금의 현실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남쪽 상황을 보면, 지난 투쟁의 해는 정치적 책동이 공산주의 운동 전체, 중앙인민위원회와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회 및 모든 당기관의 사업 전체에 결정적인 손실을 끼쳤음을 분명히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와 같은 실패와 결점을 만회하는 것이 저의 과제이고, 당 내부의 오류적 경향을 수정하는 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이 일에서 북쪽 동지들은 틀림없이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노동당 대회 결의의 실현은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의는 저희를 ‘조선 인민의 적’이라고 비난합니다. 박헌영 그룹(전북신문)이 당 대중과 인민에게 그렇게 선동하고 있습니다(조선인민보). 귀하는 남쪽의 민주주의 운동에 ‘도움’을 주었고, 최소한 귀하의 목적은 그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매우 감사를 드리지만, 귀하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으며 귀하의 결의는 역효과를 가져왔음을 알려드려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의는 박헌영이 다른 자료에서 얻어 제출한 아직 정확하지 않은 자료에 근거했기 때문입니다. 귀하는 분열되지 않고 단결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귀하는 저희 당과 다른 당들 및 민주주의민족전선 내부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상황을 명확하게 짐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샵신(Анатолий Иванович Шабшин)이 박헌영에게 보낸 그토록 특별한 일방적인 지지가 각 당파세력의 결속에 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그 이유는 박헌영이 당 내부 사정과 자기 그룹의 정책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박헌영이 A. I. 샵신에게 보내는 교활한 보고서를 직접 몇 차례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지들에 대한 그들의 과장되고 잘못된 견해였습니다. [귀하가] 조선 문자를 잘 모른다는 게 저희에게는 불행입니다.
지난 1년간 당이 걸어온 행로와 당내 불화, 그리고 남조선의 현실에 대해 짧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작년 8월 15일 형무소에서 풀려난 후 ‘정치적으로 유폐되어 있던’(되었었던) 거의 모든 이들이 마을에 모였습니다. 경성형무소, 서대문형무소, 공주형무소, 전주형무소에 있던 공산주의자들은 저의 지도 하에 당그룹을 조직하여, 감방에서 투쟁 중인 민족주의자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모든 좌파 동지들을 이 그룹 주변으로 모아들였습니다. 전주형무소에서 사람들이 풀려나오자 당그룹은 이 출감자들의 지도 [판독불가]로 바뀌었고, 서울에서는 다른 형무소들 출감자 대표들과 연락하면서 역시 출감자전원행동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이 위원회 수장으로 제가 선출되었습니다. 8월 말까지 저는 연락사업과 모든 정치범 출감자들의 정치적 통합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해방되고 애초부터 제가 내건 슬로건은 “완전한 독립 실현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모든 계급, 당, 그룹은 단결하자”였습니다. 8월 16일 전주 집회에서는 이런 지침의 선동 연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전두혁(Тен Ду-Хек) 동지가 연설 말미에 이 정책을 유지하면서 “공산주의 혁명 만세”라고 덧붙였고, 이는 대중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우리는 그의 좌익경향을 비난했습니다. 전두혁 동지는 박헌영의 분파성 때문에 그에게 단호히 맞섰습니다. 허성택, 이동호(Ли Дон Хо), 한철, 황동철(Хван Дон Чер)(황주) 그룹이 그를 따랐고, 서울에 별도의 그룹을 조직했습니다. 김현석(Ким Хен Сек)은 화요회(Хва е Хве)라는 자신의 그룹을 조직하였으나, 해방이 되자 출감한 동지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동지들로부터 절연을 당했습니다. 유축운 동지는 최경덕(평양)과 함께 비밀조정국을 창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두혁은 민족통일위원회를 조직한 후 [판독불가]회의로 확대하였습니다. 김삼룡과 박헌영은 서울에서 자신들의 그룹을 모았는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좌파그룹이 조직되어 자발적으로 저의 지도 아래로 들어왔습니다. 이 그룹은 공장 및 농민들과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모든 학생시위는 이 그룹이 지도한 것이었습니다.
공산당(‘장안’)이 결성되자 ‘콤그룹’이라는 그룹과 형무소 출감자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그룹이 여기에 참가하였습니다. 이후 ‘재건’파가 결성되었습니다. 서중석, 이정윤, 이영 같은 사람들의 지하활동가 그룹들도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따로따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애초부터 저는 모든 그룹을 공산당으로 단일하게 통합시키자는 의견을 고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그룹도 정치적 조직적으로 단단한 기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자는 출감자들의 제안과 장안파, 재건파 등등을 지지하자는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박헌영 외에는 지하활동가가 없으며 그와 그의 그룹이 큰 사업을 해냈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는 그들 사업이 거의 다 정치적 조직적으로 전혀 비평할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통합중앙본부를 발족시키기 위해 태동(Тэ-Дон)에서 열린 열성자대회에서 박이 이끄는 그룹에 통합 임무를 위임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박은 다른 그룹들을 전부 무시한 채 중앙위원회 구성을 완전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이것이 당내 모든 위기상황의 운명적인 시작이었습니다. 동지들은 선한 의지와 충분한 자각을 갖고 빠르게 뭉쳐 통합의 과정에 뛰어들었으나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이런 참혹한 사태로 말미암아 대회 개최에 대한 요구가 일었습니다. 이때부터 박은 모든 그룹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자기 그룹의 단결만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당 전체를 결속시켜 당을 건설하는 대신 그는 자신의 그룹을 만들어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당의 총노선과 대중조직들로 퍼져 나가 모든 조직의 행동이 마비되는 격동적인 모순이 생겼습니다.
거의 모든 그룹은 열성분자 만들기라는 슬로건 아래 자신의 그룹을 결속시키고 당내에 자신의 분파노선을 조성하려는 박의 행동이 파탄을 초래할 것이라고 애초부터 지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 유일하게 박의 지도 아래 모든 그룹을 통합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만일 제가 아니었다면 ‘장안’파나 출감 동지들(약 600명)을 끌어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변으로 다른 그룹들을 결집시킨 사람은 박이 아니라 저였으나, 저는 지도자인 박에게 각 그룹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모아들여 통합을 공고히 하고, 이를 통해 대중조직들의 조직화를 단호하게 추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6명의 동지가 처음부터 모든 분열적인 파벌사업을 [진행했다고] 생각한다는 건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필요했다면 애초에 박의 그룹을 고립시켰을 것입니다. 저는 통합의 길로 갔으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박은 이현상의 조언에 따라 처음부터 편협한 파벌정책을 지향함으로써 애초에 배타적으로 가족적인 중앙본부를 구성하였으나, 이 중앙본부는 해방 이후 좀 더 나아진 조건에서 완전히 무능했습니다. 행동 부족, [판독불가] 일꾼 부재, 다른 종파 동지들에 대한 무시, 박이 선발한 학생동지들을 위한 사업에서의 무지, 모든 사업의 정체 등이 그것입니다. 인민위원회는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했으나 3개월이 지나자 노동능력이 소진되었고,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두 달 반이 지나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겪어냈고, 여기저기서 분명하게 사실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동지들은 그런 편협함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으나,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만일 당기구와 대중조직들이 활기차게 움직였다면, 만일 종파주의가 격심해지지 않았다면, 만일 당의 위신이 높아졌다면, 만일 민주주의민족전선 내에 불만의 소리가 없었다면, 일은 아무 불평 없이 끝났을 것입니다. 저는 당기구에서뿐만 아니라 중앙인민위원회와 민주주의민족전선 간부회에서 계속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의 이 모든 계기들을 가장 잘 그리고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또 저는 직업동맹이나 농민동맹 같은 곳의 사정도 알고 있는데, 어느 곳이나 침체에 빠져 있고 특히 지도부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서든 일을 망치는 건 박헌영이 지원하고 있는 이주하, 이현상, 김삼룡의 종파노선입니다. 저는 더 훌륭하고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일꾼들을 끌어들여 각 지도부의 성원을 바꾸라고 몇 차례 문제제기를 했습니다만 번번이 거부당했습니다. 바로 박헌영 [판독불가] 종파이데올로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중앙인민위원회의 경우 이순금(평양)은 인민위원회 위원직에 있었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불평과 수다에만 열심이었으며 능력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귀하가 직접 평양에 확인해 보십시오. 또 홍남표는 역사적으로 열렬한 종파분자로, 처음에는 이주하와 접촉하면서 작년 12월 말 인민위원회 결정의 동의도 받지 않고 인민위원회 명의로 ‘신탁통치’에 공공연히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박헌영 그룹의 일원으로서 중앙위원회 임명에 따라 인민위원회 분파 비서로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또 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분파의 모든 성원이 그를 반대했으나(금년 1월) 인민위원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해임되지 않았고, 민주주의민족전선 안에서 얼굴만 드러내기 일쑤였습니다. 조직부장은 홍덕유, 정칠성 동지가 맡고 있습니다. 홍덕유는 사무실 책상에만 앉아 자장가나 불러대고, 정칠성은 빈둥거리면서 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일꾼들과 하급 일꾼들은 이들에게 왔다가는 환멸을 느끼고 “조직부는 죽은 집이다”라고 말하면서 나옵니다. 저는 홍덕유의 파면을 건의했지만 그가 박헌영 그룹 소속이어서 중앙위원회는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다른 부서들 사정도 그렇습니다. 2개월 후 민주주의민족전선 내부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박헌영 파벌주의가 인민운동을 어떻게 갈아먹었는지 전형적인 실례 두 가지만 들어 보겠습니다.
이주하, 이현상, 박헌영은 인민위원회 결정과, 하급 인민위원회 모든 성원의 강화 및 양성에 관한 제20차 대표자회의를 심지어 의식적으로 보이콧하였습니다. 1년간 인민위원회의 발전을 무시해 온 지금 “인민위원회에 권력을!”이라고 외치는 게 얼마나 [판독불가]한지요. 제가, 보이콧 정책을 중단시키고 하급 인민위원회를 발전시킬 것과, 당은 전반적으로 하급 인민위원회의 사업을 광범위하게 발전시키고 이들을 강화시켜야 하며 이 인민자치 주변으로 인민대중을 끌어모아 이 조직들을 통해 인민에게 민주주의 정신을 가르치고 “인민공화국!”을 선전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자, 3월에 있었던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이주하 동지를 극좌편향으로 명명하였습니다. 하지만 곧 좌편향인 박헌영과 이주하 측의 반격을 받았는데, 반격의 빌미는 그것이 좌우합작을 방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좌우합작 전술은 여운형이 아니라 박헌영과 이주하가 금년 1월부터 구상하였으며, 이강국과 홍남표가 실행에 나섰습니다. 5월에 박헌영이 손수 좌우합작 구호를 내걸었고, [판독불가] 나중에 이주하가 제멋대로 비서부 명의로 3원칙 친일파와 파시스트를 제거할 것, 테러를 중지하고 민주주의자를 석방할 것,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총체적으로 지지할 것-역주.
을 공표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실책에도 불구하고 이 동무들을 지원하고 아무런 자아비판 없이 중요한 자리에 앉혀 두는 것은 노동자들이 박헌영 그룹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썩은 농담’입니다.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당을 결성하는 처음부터, 분산되어 있던 파벌들을 통합하고 진보적인 민주주의적 요소들을 조직적으로 포용하며 당 대오들을 결속시키고 훌륭한 일꾼들을 선발하며, 완전한 평등을 바탕으로 모든 파벌을 근절시키고 파벌 사이의 경계를 제거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매번 일방적인 콤그룹의 반격을 받으며 투쟁을 통해 쟁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헌영의 종파이데올로기가 위세를 떨칠수록 당 대오들은 더 교란되었습니다. 26년간의 역사적 경험이 증명한바, 이것이든 저것이든 어떤 한 그룹에 대한 지지는 공산주의 운동의 진보를 좌절시킵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는 것은 조선 인민에게는 악입니다. 모든 파벌 중 어떤 한 파벌을 지지함으로써 전혀 필요없는 [판독불가]를 자극하고 당 사업을 마비시키는 자는 조선 인민의 적이자 완전한 민주독립의 실현을 저해하는 분자인데,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그런 정책은 우리 인민의 민주주의 세력들을 [판독불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과거 우리의 운동을 전혀 숙고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한 파벌을 지지하는 코민테른 정책이 실패한 후 모든 [파벌]을 해산하고 새로 건설해야 했던 그 경험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박헌영 그룹에 대한 공공연한 지지는 우리 당을 와해시켰고, 그의 파벌적 성벽에 대한 무비판적 태도는 현재 상황에 파멸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8월 4일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저는 분명하고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즉 한 그룹과 함께하여 당을 분열시킬 것인가 아니면 종파주의를 거부하고 당을 결속시켜 3당 통합을 신속히 실현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저희 당 지도자인 박헌영 동지는 전자를 선택함으로써 종파주의를 위해 인민의 일을 저버리고 통합을 저해했으며, [판독불가].
1년 동안 저는 당과 인민위원회, 민주주의민족전선 주변으로 대중을 모아 저희 당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판독불가]를 결속시키고자 노력했으나, 박 동지와 이현상, 이주하, 김삼룡이 편협한 종파정책을 실행했습니다. 자금은 자기 그룹의 동지들에게만 제공하고 공식적으로 당기관들에는 주지 않았으며, 연락도 당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봉건적인 가족처럼 자기 종파 연락원들을 통해 하였습니다(전북은 이복기, 경남은 마송(Масон) 동지, 충북은 이만영(Ли Ман-Ен)을 통하는 식입니다). 이주하와 이현상을 우두머리로 하는 박헌영 그룹의 동지들은 스스로 비공식적인 연락을 중단하고 규율을 따라야 했습니다. 스스로 규율을 위반하면서 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박헌영 분파주의의 논리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그는 당 전체의 지도자이지, 이 원칙의 레일에서 떨어져 나온 일개 그룹의 지도자가 아닙니다. 인민위원회, 당, 그 외 다른 조직들의 수많은 동지들은 저까지 어떤 한 그룹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습니다만, 저는 매번 단호하게 저항을 했고 또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니라면 박헌영의 분파주의를 반대하는 거대한 당 대중이 분파주의 청산이라는 과제 이행을 위해 당의 온갖 방해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오로지 저만이 [판독불가]에서의 결정적인 충돌을 가능한 한 피하면서 이들을 조직화된 올바른 정치적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8월 15일 서울 집회에서 이승엽은 “반당 분자들이 통합을 반대하고 지연시키고 있으므로, 인민은 당이 우리의 반당 분자들을 청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항목을 의결에 포함시킴으로써 자신의 종파노선을 실행하고자 했습니다. 수만의 노동자들이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악문 채 집회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콤그룹의 한 동지가 단호히 퇴각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박과 이강국에게 그렇게 하도록 두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래야 대중의 분열과 충돌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8월 28일 인민당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이철수를 우두머리로 하는 박헌영 그룹은 또다른 여운형 그룹에 테러를 가했고, 목포에서는 8월 중순에 박헌영 종파가 신인민당에서 파견나온 사람을 마구 구타하였습니다. 조직화된 우리 대중은 콤그룹 동지를 폭행하려 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하고 싶어 하나, 저희는 단호히 말리고 있습니다. 마침 덧붙일 이야기가 있는데, 작년(10월)에 처음 테러를 시작한 것은 박헌영 그룹이었습니다(이철수가 이끄는 청년돌격대라는 그룹이 처음으로 반동적인 청년들을 체포하여 비밀스런 곳에 감금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저는 그와 같은 테러리즘에 단호히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일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사람들을 통합하는 대신 박은 조직화된 대중을 분열시키고 흩뜨려 놓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정책입니까. 저는 그런 정책을 거부한다고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동등한 원칙으로 우호적인 정당들과 인민을 교육시키고 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는 어떤 통합 방법이 가장 빠르고 합리적이며 작금의 국제정세의 이해(利害)에 부합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종파이데올로기와 정책을 갖고 있는 박헌영은 이미 당 대중으로부터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정당들로부터도 고립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권위를 회복시키고자 그는 사변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9월 1일 이주하는 김병숙(Ким Бен Сюк)에게 “조선 혁명의 지도자는 박헌영이 되어야 한다. 그 외 다른 어떤 상황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놔두십시오. 하지만 이를 위해서 그는 일개 그룹이 아닌 인민의 지도자가 되어야만 하며, 그러려면 자신의 허황된 파벌주의와 분방한 시야를 청산해야 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선 남쪽에서는 그의 노래가 불리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 상황까지이기는 하나 그는 A. I. 샵신과 북측 동지들의 배타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매우 슬픈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의 행보는 파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었는데, 무엇을 위해 종파주의, 분파주의, 그리고 계속되는 과거의 오물을 유지해야 한단 말입니까. 자유롭게,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러나 용감하게 일꾼들을 선발해서 전체적으로 당을 결속시켜야 합니다. 이 문제는 남쪽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 북쪽에도 유효합니다.
[판독불가] 서울에서 저는 무분별이 허용될 경우 표면으로 떠오르게 될 모든 위험들을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방성을 피하는 일입니다. 공동의 과제들을 토대로 동지적으로 결속해야 하며, 사업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공산주의자들 및 모든 민주세력을 결속시켜야 합니다. 민주적 과제를 실행하는 데 있어 어느 한 그룹이 아니라 현재의 모든 민주세력들을 동원하고 조율할 것이 요구됩니다. 당연히 올바르고 공평한 선택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건준(건국준비위원회)은 민주세력 일부가 통합한 것인데, 아직은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분파주의와 종파주의에서 나온 것으로서 박헌영의 지시에 따라 최영달과 이강국이 실행하고 있는 좌파적 정책은 건준을 분해시키고 내부 위기를 불렀으며, 이 조직의 행동을 마비시켰습니다(작년 8월 말).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창설을 위해 박헌영은 여운형, 허헌 및 여타 인사들과 교섭을 벌였고 그 결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이승만 같은 유형을 반대했습니다. 나중에 박은 저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그리 된 건지 자신은 모른다고 답하더군요.
조선 인민들 중에서 훨씬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을 공산당 중앙위원회로 끌어들일 수 있었으나, 분파 정책 즉 좌파적 경향이 그것을 좌절시켰습니다.
인민공화국과 각급 인민위원회가 저의 제안과 주도로 창설되었습니다(작년 9월 인민공화국과 중앙인민위원회 제1차 대회 의사록). 작년에 창설되던 날부터 [판독불가] 동안 그는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박의 정책은 서서히 외면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인민위원회에 손을 흔들던 박, 이주하, 이승엽, 허성택의 가장 중요한 실수였습니다. 이것이 인민위원회에 대한 유해하고 실패한 정책입니다. [판독불가]한 체계를 내세울 때 기존의 [판독불가] 다른 기관들은 새로운 조직의 불만을 만나곤 했는데, 이것이 과거 모든 운동의 가장 중요한 결함 중 하나입니다. 우리에겐 인민위원회가 있었으나, 이것이 박과 이주하의 오류였던 것입니다.
관료주의 문제. 이현상과 이주하의 위대하고 완전한 사업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관료주의와 고립주의입니다. 여기에는 이를 증명할 게 전혀 없군요. 이주하는 중앙위원회에 가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는데, 능력에 한계가 있는지라 일이 진척되지 않아서 인민이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만일 인민이 [판독불가]를 했다면 이는 중앙위원회의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대중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하급 동지들의 독자적인 활동력 덕분입니다.
중앙위원회 성원은 종파적일 뿐만 아니라 [판독불가]합니다. 중앙위원회의 여러 회의에 참석했던 저는 중앙위원회 성원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박 한 사람과 두세 명의 동지만 이야기를 할 뿐 나머지는 침묵을 지키더군요. 이들은 일년 내내 침묵했습니다. 중앙위원회 위원인 한 노동자 동지는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한 후 양심상 중앙위원회 위원직을 거부했으나 만류당했습니다(인천지역 동지). 건장한 노동자 동지들이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 알았던 거지요. 그런 중앙위원회가 무슨 의미를 창조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박과 이현상, 이주하, 그 외 사람들에게 중앙위원회 성원을 바꿔 새로 보충하고, 정치적으로 투철하고 권위 있는 중앙위원회를 만들라고 수없이 솔직하게 조언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박헌영 동지의 과오로서, 이는 열성분자에 대한 무지뿐만 아니라 그의 파벌적 편협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운동을 자신들의 공으로 돌립니다.
인민공화국 선언 연설을 위한 9월 시위행진은 저의 건의에 따라 중앙인민위원회에서 조직하였고, 10월 시위행진도 역시 제가 발의하고 중앙인민위원회가 실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이 우두머리로 있는 ‘재건’ 동지들은 처음에는 저지하려 하다가 추수기가 되자 이것을 자신들의 활동으로 치부하였습니다.
8월 15일 광주(Гванджу). 이 투쟁은 중앙위원회와 박헌영 그룹의 타협적인 [판독불가]에 반대하는 동지들끼리만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도위원회는 어떤 지령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광주와 여러 광산의 지역 동지들이 스스로 반동적인 미제국주의에 맞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박헌영은 양심도 없는지 공식 보고서에서 이 투쟁이 마치 콤그룹 지지자들에 의해 조직된 것인 양 말했습니다. 그저께 저는 박헌영의 거짓말과 비양심을 분노에 차서 욕하는 광주의 광산노동자 대표들과 만났었습니다. 이 투쟁을 지도한 열 명은 감옥에 있습니다. 투쟁이 기층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중앙위원회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지역 동지들이 대중과 함께 혁명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위원회 간부회에서 나온 결의안은 음모와 선동정치로 [판독불가]있습니다(이 결의안을 작성한 사람은 일본 첩자인 조두원으로, 저희가 갖고 있는 기밀자료에 의하면 그는 ‘대화숙’ 일제가 1941년 1월 사상범의 보호관찰과 집단 수용, 나아가 조선인의 황민화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사상교화단체-역주.
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중앙위원회 [판독불가]에 해당하는, 박헌영의 중요한 정치고문이자 비서입니다). [판독불가] 조직의 [판독불가]한 투쟁에서 중앙위원회 지도 하에 [판독불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사실은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박헌영 그룹은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었고, 중앙위원회는 [판독불가]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중앙위원회 간부회 조항 중 하나는 “충청북도에서는 소수만이 반대파를 지지할 뿐 절대 다수는 중앙위원회를 지지하고 있다”입니다. 이것은 박헌영의 거짓말입니다. 충청북도에서는 8월 23일자 도대표자회의에서 약 1,100명의 당원이 중앙위원회의 종파주의를 거부하고 [판독불가] 당대회 소집을 요구하였고, 이 결의를 도위원회 대표인 중앙위원회 유축운에게 보냈습니다. 이토록 명확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박헌영 동지는 다수 위원보다는 북쪽 동지인 당신들과 존경하는 우리 러시아 지도자들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거짓된 결의안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저는 노동당 대회에서 박헌영의 보고와 사훈(Сат Хун)의 정보에 따라 결의가 이루어졌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두 동지들은 당 내부의 진실된 상황을 모릅니다. 다른 조항은 “서울에서는 1/10 이하만이 거부하고 있다”인데, 사실을 말하자면, 활동원 200명이 참석한 열성분자 시대표자회의에 대표로 나온 2,600명의 당원들은 중앙위원회의 허황된 지도를 거부하고 당대회 소집을 요구하였습니다(1946년 9월 2일). 박의 선동정치와 거짓말을 믿지 마십시오. 이는 존경하는 북쪽 동지들과 우리 소비에트 지도자들의 위신을 실추시킬 테니까요.
[판독불가]한 간부회 성원에 관하여. 간부회에 호출된 사람은 하위조직들의 비공식 대표들, 콤그룹 회원들, 그리고 다양한 대중조직 정파들의 비공식 대표들입니다. 이것은 간부회가 아니라 박헌영 계파의 대표자회의이며, [판독불가] 이 간부회에는 부활한 몇몇 박헌영 계파들과 선별되지 않은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심지어 무당파도 참여했습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중앙위원회 성원이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요. 더 전에 서둘렀어야 하는데 말이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아닙니까?” 박헌영에게는 또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서부에서 이주하와 이승엽이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다양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대담들을 공개하는 것이 다이고, 제기된 과제의 실행계획에 대해서는 고민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당기구가 공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문 관련 사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공장조직들 분위기가 중앙위원회에 특히 ‘적대적인’ 상황은 놀랍지 않습니다. 전차차고 노동자, 서울 동부지역 모든 공장의 노동자, 철도 종사자, 용산‧마포의 기계기사, 자동차 종사자 들이 선봉에 서서 종파주의를 반대하고 있으며, 경찰과 미국인들이 자동차 종사 노동자들을 마구 구타했던 7월 4일의 타협적 정책에 대해 영등포 공업지구 전체, 인천 노동자들, 부산‧대전‧대구의 모든 노동조직, 광주 탄광부들, 삼척 어부들, 와리(Вари) 농민들, 인천‧부평‧소사의 수운 종사자들, 군산‧목포 노동자들 등등이 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시민, 프티부르주아, 인텔리 세포들 일부와 학생 일부가 박과 그의 그룹을 지지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저와 제 동지들은 노동자 대중의 선두에 서서 박과 이주하의 분파주의에 맞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민 대중의 자연스런 요구입니다. 저는 당기구 전체가 프티부르주아적 분파주의의 족쇄를 가차없이 벗어던지고 근로자들을 위해 일하도록 하기 위해 [판독불가]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당 노동자 위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박은 [판독불가]의 노동자들을 파벌이자 분열책동자로 칭하고 있으나 이것은 완전히 모순적인 정의입니다. 공장노동자들 스스로가 동무에게 이에 관해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당신들은 서울, 부산, [판독불가] 등지에서 노동자 활동원들을 불러 당내 상황의 진실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겨울 영등포 노동자들은 북쪽 동지인 당신들에게 올바른 해결책을 달라고 [판독불가]했으나 당신들은 [판독불가] 거절을 했고, 그래서 지금은 박헌영 그룹이 선동하는 것처럼(경북신문, 인민보, 현대일보), 분열주의 정책을 통해 3당 합당을 지연시켰던 해로운 박헌영 분파주의를 지원하기 위해 노동당 대회에서 나온 모든 결의들은 1년간 허황되고 낡아빠진 박헌영 분파주의와 싸워온 모든 불쌍한 노동자들과 우리를 ‘인민의 적’으로 명명하였습니다. 박헌영 그룹 동지들은 북쪽이 콤그룹을 지지한다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나 이 ‘인민의 적’, 즉 나와 5명의 내 동지, 그리고 우리와 함께 이주하, 이현상, 김삼룡의 분열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인 이 ‘인민의 적들’은 지난해 일제의 잔인무도한 만행 아래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국주의를 용서하지 않고(비전향) 감옥에서 뼈만 남은 채 [판독불가] 죽어갔습니다. 이 ‘인민의 적들’이 1년간 인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인민을 위해 밤낮으로 투쟁했으며, 미 제국주의의 탄압[판독불가], 식량부족과 질병으로 죽어간 것입니다. 이 ‘인민의 적들’은 앞으로도 예전처럼 일제와 싸우면서 인민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당 전체가 아닌 어떤 한 미미한 종파를 지지하고, 우리를 ‘인민의 적’으로 지칭하며, 인민당과 신민당 앞으로 보낸 결의안과 편지 들 때문에 당신들은 3당 통합과 모든 인민세력의 민주적 단결에 해를 끼쳤습니다. 당분간 실시중인 극좌적 정책과 과거의 타협적 노선, 이 모든 것이 3당을 통해 조직된 대중을 선도하는 당신들의 권위를 총체적으로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결의안과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들은 인민을 결속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3당이 뿔뿔이 흩어지는 데 결정적인 동인이 되었습니다. 당신들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고 무산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박헌영의 선동주의적 보고서들에 의해 뒷받침된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들의 제안과 지지 속에서 나온 북쪽 대회의 일방적 결정을 듣고 당신들이 신민당, 인민당, 노동자공산당 당원들의 [판독불가]를 알았더다면, 당신들은 틀림없이 슬픔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 당신들은 다른 경로를 통해 듣게 되겠지만 박헌영 그룹 동지로부터는 아닙니다. 그는 당신들에게 거짓된 환상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위 회복을 위해 박은 인민에게 이런 선동을 하고 있습니다. 즉 김일성이 모스크바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통합에 대한 지령을 받고는 평양에 와서 박을 불렀고, 붉은군대 정치부 지도 하에 통합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입이다. [판독불가]에게(경상남도, 한문석(Хан мун сек), 허성택, 김[판독불가]) 곧 닥칠 폭로가 [판독불가]. 누가 통합을 반대하고 지연시킵니까?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허황된 정책을 펴고 있는 박헌영과 이주하에게 있습니다. 박헌영 종파주의에 반대하는 동지들이 있는 곳에서는(전북, 전남, 서울 동부 지역) 이미 아래에서부터 통합에 착수하였습니다. 상부에서 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모든 문제를 빠르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1. 박은 당 대중의 비판적 입장이 담긴 선언문과 종파주의라는 허황된 정책의 파멸성을 공개해야 한다.
2. 분열의 책임자인 이주하, 이현상, 김삼룡, 이승엽을 북으로 소환한다.
3. 중앙위원회 성원을 건강한 일꾼 요원으로 교체한다.
4. 통합은 모든 당의 위신 제고에 기반한 완전한 평등을 토대로 진행한다.
5. 어떤 한 그룹에 대한 지지를 중단한다.
6. 3개 당의 통합에 더해 모든 당조직들이 통합하는 노선을 [판독불가].
7. 각 당의 규율을 당 수뇌부의 모든 임원들과 박헌영 그룹원들에게 적용한다.
8. 당의 현금은 당 사업에 균등하게 사용한다. (박, 이주하, 김삼룡, 이현상은 당의 금고에서 나온 돈으로 사치에 빠져 있습니다. 날마다 고기에 우유, 흰쌀밥을 먹는가 하면, 예방접종을 하고 비싼 약을 복용합니다. 이런 얘기를 해 준 사람은 인민병원 원장 이정민(Ли Ден Мин) 동지로, [판독불가]. 그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공산주의자로서 그들에게는 도덕이 [판독불가]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한테 올 때면 반은 굶주린 사람들이 하루에 두 번 감자와 쌀보리를 먹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자기 눈으로 봅니다. 그는 “[판독불가] 당신들에게는 귀족적인 에티켓이 있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로부터 땡전 한 푼 받은 바 없습니다. 당의 금고 조사를 요구할 때마다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매번 퇴짜를 맞았습니다.
박은 모든 민주주의 정당 및 모든 정파 들과 화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에서 그의 역할은 전무합니다. 그는 다른 당의 민주주의자들과 통일전선을 구축할 능력이 결단코 없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민족전선 모든 주요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박과 내가 실행하고 있는 정책은 똑같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그가 반목을 만들어내는 그 정책을 나는 같은 사람들에게 매우 탄력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을 위해서는 세심한 사업과 전술이 필요한데도 박은 오로지 ‘나’를 내세우는 데서 출발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선전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정치적 전술적 과제와 지령을 나는 다른 동지들을 거쳐 그러나 아주 매끄럽게 실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위원회가 나에 의해서만 지도되고 있다는 입장이 일반적으로 인정된 바입니다. 광범위한 층에서 나를 [판독불가]하게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인민 사업이 진척되고 있는 것에 만족합니다.
신민당과 인민당의 분열에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 당의 분열에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통합 정책이 폭로된 데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기강 해이와 도덕적으로 불건전한 당내 상태, 그리고 정파주의의 [판독불가]에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민당과 신민당의근본인 당원 대중이 통합 정책에서 배제된 데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통합을 자신의 불장난으로 [판독불가]한 데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민당 내부에 반공산주의적 상황이 조성된 데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공산당의 권위가 추락한 것에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4개 도위원회(경남, 전북, 충북, 경기도, 서울[판독불가])의 발의로 당대회 소집 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위원회에 대해 우리 6명의 동지는 아무런 공식적 입장이 없습니다. 위원회는 8월 29일 설치되었습니다. 힘도 없고 권위도 없는 중앙위원회가 된 데 대해 박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논쟁과 모욕을 피하려면 당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지도부를 선택하도록 두십시오. 중앙위원회 성원을 바꾸면 북쪽 동지들의 지도적 역할이 또는 형제 같은 당과의 관계가 [판독불가]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훨씬 더 강화될 것이며 사업도 더 활기차게 진행될 것입니다. 박은 형제 같은 당의 지도방침을 실행하는 데 있어 자신만이 특허를 가졌다고 선전했습니다. 이건 정말로 웃긴 일입니다.
지도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서는 안 됩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충분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네 북쪽의 결의를 우리는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옳았는지, 박헌영이 얼마나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으며 많은 오류를 범했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남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편파적이었는지를. 북쪽 대회에서 공개적으로 나온 결의안이 실행됨으로써 당신들은 결국 [판독불가] 남쪽 공산당과 민주주의 단체들이 소비에트 지령을 받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틀림없이 좌익에 대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맹렬한 탄압이 시작될 것입니다. 덧붙여야 할 것은, 구체적인 계획이 전혀 없이 군정과 직접 충돌하면 통합마저도 [판독불가]된다는 점이다. 통합은 중도에 저지될 것이고, 모든 민주주의 단체들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박의 돈키호테 같은 행동은 공산주의자들의 고립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정윤과 박용선이 여기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들을 방면해야 합니다. 또한 [판독불가]가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최근에 [판독불가] 도망자들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안부를 전하며. K.D.[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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