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자료 195건의 연구성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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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당시 화자의 나이는 10세로 어렸다. 화자가 기억하는 전쟁은 참외밭과 수박밭에 폭격이 있 었고 겨울 동란에는 징소리가 요란하게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치안대장이었기에 동네 청 년들과 함께 죽창을 들고 싸우려고 했으나 상대가 되지 않았고 인민군이 항복하면...
    조사지역충남 당진 | 조사일2013년 5월 9일
  • 어렸을 때 압록강 근처에 살고 있어서 아버지를 따라 중국을 왕래한 경험이 있다. 일년 간의 교 직생활로 부르조아라는 낙인이 찍히자 일사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피난을 나온다. 옹진에서 아버지 가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죽을 뻔한 위기를 맞는다. 사리원에서 중공군을 전멸...
    조사지역경기 안산 | 조사일2012년 2월 14일
  • 4‧3 사건 당시 조용하던 마을에 서북청년들이 들이 닥쳤다. 군인들은 산폭도들이 들어오지 못하 게 석담을 쌓았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강 선생은 석담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구연자의 말에 따르 면 강 선생은 아무 죄도 없었으며, 강 선생이 죽고 동네 사람들이 많이 울었...
    조사지역제주 | 조사일2014년 1월 21일
  • 제주도가 고향인 화자는 전쟁 때문에 처음으로 배를 타고 제주도 밖의 육지로 나오게 되었다. 처음 보는 기차와 육지음식들이 너무도 신기했다. 음식 중에 처음으로 돈가스를 먹게 되었는데,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제주도가 고향인 탓에, 휴가를 받아 고...
    조사지역제주 | 조사일2014년 01월 20일
  • ‘색시’하며 쫓아온 흑인이 전쟁보다 무섭더라. [한국전쟁 체험담 조사 연구-현지 답사를 통한 한국전쟁 관련 구술담화의 집대성과 DB구축- | 건국대학교]
    전쟁이 나자 겨울 난리에 충주까지 피난을 간다. 달래강을 건너면서 소나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다. 이 때 죽은 소를 피난민들이 함께 잡아먹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미군이 주둔해 있었 다. 미군들이 여자들을 못 살게 군다는 소리가 흉흉했다. 고모 집에 가는 데 흑...
    조사지역강원 횡성 | 조사일2012년 7월 25일
  • 곽창섭 화자는 6.25사변이 나던 해 초등학생이었다. 1.4후퇴 때 부모님과 함께 충청도로 피난을 갔다. 충주에서 가져간 쌀과 얻어온 반찬으로 식사를 해결하며 지냈다. 당시에 라디오가 흔하지 않 아서 전쟁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휴전 협정이 이루어진 뒤에 다시 고향...
    조사지역강원 인제 | 조사일2013년 7월 01일
  • 전쟁 발발 후 성주에 있는 고모댁으로 피신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족이 세 갈래로 나뉘어 서로 생사를 몰라 애태웠다고 한다. 강을 건너는 피난민 중 소를 건너게 하고 소 꼬리를 잡고 건너는 사 람도 있었다. 당시 말라리아가 창궐했는데 화자도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이 심했고...
    조사지역경북 김천 | 조사일2013년 3월 24일
  • 일제 때 어머니가 훈련에 동원돼서 일본말을 배운 것이 기억이 난다. 농사지은 곡식이나 콩, 옥 수수를 모두 숫자를 적어갔고, 공출해갔다. 다 공출해가서 콩기름을 짜고 남은 콩 껍데기를 먹고 살았다. 해방이 되어 집집마다 국기를 달았던 기억이 있다. 6.25때 피난...
    조사지역강원 정선 | 조사일2014년 4월 9일
  • 6.25가 일어나기 전날 오토바이를 탄 군인들이 내려오는 것을 구경했고, 다음날 전쟁이 일어나 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인민군들에게 당한 것이 많아서 주민들이 인민군들에게 보복하기도 했다. 동짓달 난리에는 중공군이 차를 타고 밀고 내려왔다. 중공군들은 먹을 것들을...
    조사지역강원 인제 | 조사일2013년 5월 12일
  • 강화도로 인민군들이 들이닥쳤을 때, 차봉순 할머니는 첫 아들을 낳고 살아가고 있었다. 경찰이 었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어린 아기와 함께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민군들이 총을 들이대서, 목에 시퍼렇게 ...
    조사지역경기 남양주 | 조사일2013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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